28일. 나는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by 마부자


금주 148일째,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거실로 나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의 하늘은 잔잔했다. 특별한 기세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는 듯한 하늘이었고, 바람도 조용했다.


이런 날은 나도 따라 고요해지는 것 같다. 명상을 마친 뒤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하루는 시작되었다.


제목: 봄

봄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봄이고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봄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리는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하루의 모든 시간을 책과 나눠 가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것은 다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마음에 천천히 새기는 일이었다.


황제가 남긴 일기라는 형식은 묘하게도 내 안의 정직함을 끌어올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을 향해 쓴 고백이기에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다스렸던 사람이 매일 스스로에게 절제와 겸허를 가르치려 했던 흔적들. 절대자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버티기 위한 일상의 훈련 같은 문장들.


나는 그 글을 한 줄씩 넘길 때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삶의 태도에 대해 조용히 질문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에게도 그가 남긴 문장이 작은 거울이 되어 다가오는 것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내면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를, 그는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녁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후 다섯 시쯤, 대구의 하늘이 느닷없이 갈라졌다. 천둥은 거침없이 울렸고, 번개는 거대한 선처럼 하늘을 가르며 내려왔다.


빗방울은 서둘러 쏟아졌고, 그 격렬한 기세는 순식간에 창밖을 덮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책장을 넘기던 손끝에 햇살이 살포시 닿아 있었건만, 이제는 유리창 너머로 거세게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그 순간, 시간은 결코 단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마음에 내려앉았다. 하루라는 이름의 길 위에도 고요와 격랑은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갑작스레 요동치는 하늘 아래에서 선명하게 체감했다.


오전의 햇살과 오후의 폭우가 하나의 날 안에 나란히 놓여 있었듯, 감정과 생각 역시 명확히 분리되거나 질서 있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그대로 지나가게 두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삶은 예고 없이 무너졌다가 다시 조용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그 안에서 늘 균형을 이루려 애쓰기보다는, 변화 자체를 수용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단단하게 쌓아올린 하루의 정적은 생각보다 쉽게 깨졌고, 그 안에서도 나는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마치 감정도 날씨처럼 예고 없이 몰려오고, 지나가야 비로소 남는 것이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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