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9일째,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몸을 풀었다. 느리게 팔을 들어올리고 한 번 크게 기지개를 켠 다음 거실로 나가 커튼을 걷었다.
제목: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창밖의 날씨는 그저 그런 회색빛이었지만, 그런 흐림이 주는 평온함이 오늘 아침에겐 어울렸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멈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나뭇가지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며 사람들의 움직임마저도 조심스럽게 느려져 있었다. 마치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명상을 마친 뒤 책상에 앉았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의 하루는 이미 바쁘게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내 하루는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시작되었다.
요즘 따라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정확히 말하면 아무런 '결정된' 생각 없이 잡생각은 흘러가고 어느새 그것들이 감정의 실마리처럼 남는다.
오늘 아침엔 '멈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요란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고요하게 멈춰 있어도 내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누구를 만나지 않으면 소외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이렇게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은 오히려 나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오늘 아침 창밖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내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멈춤'이라는 단어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멈춤'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나에게 쉼표보다는 마침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깐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까지인 것처럼. 그러나 그건 오해였다. 멈춘다는 건 끝내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어떤 것이 다르게 시작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모든 게 정지된 듯한 그 순간에도 마음은 묵묵히 작동하고 있었고 감정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오히려 멈춰 있을 때 나는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요란하지 않고 말도 없지만 조용히 나를 어루만지는 어떤 힘. 그게 멈춤이 가진 본질이다. 멈춤은 도망이 아니라 인정이고, 회피가 아니라 관찰이며, 정체가 아니라 준비다.
오늘 나는 내가 걷는 속도와는 상관없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조금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멈춘 자리에서도 삶은 자라난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좀 멈추고 나를 돌아봐야 할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52년이라는 시간을 조용히 내려놓고, 그것들이 내게 남긴 무게와 결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늘 앞으로만 걸어오느라 미처 마주하지 못한 나라는 사람. 그 시간을 살아내느라 진짜로 살아보지 못한 마음의 결들이 있다면, 지금 이쯤에서 비로소 그 조각들을 하나씩 다시 맞춰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달릴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잠시 멈춰야 한다. 시작을 위한 멈춤, 그리고 다시 나를 알아보기 위한 조용한 시선.
그런 시간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