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7일째,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몸을 가볍게 풀었다. 여느 때처럼 거실로 나가 창을 열었고 그사이로 들어오는 공기에 묘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는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한 열기였지만, 아직은 봄의 끝자락이 조금은 미련을 남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멈춘 듯 고요한 거리의 공기 속에서 오늘은 그저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날이겠다는 예감을 받았다.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대구 중심가로 나갔다. 평일 오후의 도시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공기의 결은 평소보다 조금 더 거칠었다.
선거철이었다.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주황색까지, 각자의 신념을 드러내는 색들이 거리 위로 펄럭이며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걸었고 그 틈을 비집고 나오는 확성기 소리는 또렷했다. 마이크를 잡은 선거운동원들은 웃는 얼굴로 지나가는 발길을 잠시 머물게 하고 있었다.
그 미소는 의무처럼 보였고 그들의 말투는 정제되어 있었지만 어딘가 지나치게 정직했다. 그래서 오히려 낯설고 이상하게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생각했다. 이 거리 위를 가득 채운 말들 가운데 진심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분명 선택할 수 있다.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남아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선택하고 싶은 무언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많은 메시지, 너무 많은 얼굴, 너무 많은 다정함 속에서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고를 수 없었다. 선택은 넘치지만, 마음은 어디로도 닿지 않았다.
지난 3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선거를 통과해오면서 내 안에 남은 건 기대보다는 피로였다. 바뀌는 이름들 속에서도 정작 내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체념, 그리고 그 체념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 무력감은 처음에는 슬픔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내 안에 뿌리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그런 기대조차 내려놓았던 내가 조금은 다른 마음을 품고 싶었다. 서로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가 아닌, 정책 중심의 선거가 되길 바랐다.
말이 아닌 내용으로 설득하는 정치, 감정이 아닌 신념으로 움직이는 시간.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기대는 서서히 조용한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름표를 바꿔 달고 다시 모이는 이합집산은 더욱 분주해졌고 결국 익숙한 풍경이 반복되었다. 서로를 향한 비난, 정쟁, 상대의 허점을 물고 늘어지는 싸움은 또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마음을 덜어내기보다 더 무겁게 짓눌렸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조차 너무 순진한 것이었을까. 대단한 것을 바란 것도 아닌데, 그마저도 멀게 느껴지는 지금, 거리에 펄럭이는 색색의 현수막 아래서 나는 오히려 한 걸음씩 더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만 선명했다.
볼일을 마치고 지하철에 올랐다. 퇴근 시간이 겹쳐 객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깨와 어깨가 스치고, 서로의 발들이 발끝을 누르고 시선은 각자의 손바닥을 향해 있었다.
누구도 말을 섞지 않았고 모두가 하루의 피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우는 중이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눈빛들이었다. 도시의 저녁은 늘 그렇게 닫힌 표정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가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 휴대폰 통화를 너무 크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익숙한 음색과 말투가 귀에 들어왔다.
선거 연설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한 어르신이 스마트폰으로 선거 방송을 켜두고 있었다. 이어폰도 없이 마치 그 공간 전체가 들어야만 하는 메시지인 양, 지하철 칸 안에 연설의 음성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소리의 울림은 묘하게 씁쓸했다. 누군가는 그 말을 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 사소한 충돌은 하나의 풍경처럼, 이 시대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조용히 혼자만의 저녁을 원했던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확신을 공공의 장소에서 들려주려는 듯 이기심 가득한 타인의 목소리가 지하철 내부에 울려퍼졌다.
순간, 객실 전체가 그 목소리 하나로 채워졌다. 텅 빈 공간도, 사람 사이의 틈도 없이 연설의 말들이 퍼져 나갔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했고, 또 누군가는 지친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무언의 정적 속에서 각자의 피로와 체념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나는 창밖 어둠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터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검은 벽이 묘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서로의 신념을 주장하고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쓰는 공간, 함께 나누는 시간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태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목소리는 커졌고, 말은 많아졌지만, 정작 그 안에는 진짜 이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했다.
설득보다는 주장, 대화보다는 통보가 당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말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 지하철 안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 연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아무도 침묵을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오히려 말 없는 이해가 더 깊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소리 없는 배려가, 가장 큰 공감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