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6일째 , 짧았던 1박 2일의 여운이 몸에 남아 있는 아침이었다. 피로보다는 기분 좋은 후유증이 먼저 찾아왔고 그 탓인지 몸은 평소보다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창문을 반쯤 연 채 맞이한 아침 공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온기가 섞여 있었다. 차갑지 않고 부드럽게 어느새 계절이 이토록 가까이 다가와 있었나 싶을 만큼 온기가 스며들었다.
제목: 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바람도 행가를 머금은 밤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가에서
우리는 만났다
어둠 속에서 봉오리진
하이얀 탱자꽃이 바르르
떨었다
우리의 가슴도 따라서
떨었다
이미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별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어제 아침 하늘은 수평선 위에서 검푸르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오늘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빌딩 숲 사이로 얇은 지평선이 얼굴을 내밀었다.
자연과 도심이 완전히 다르듯, 풍경은 서로 닮지 않았지만 그 각각의 빛깔로 아침을 열고 있었다. 하루차이로 전혀 다르게 내 눈앞에서 아침은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아내도 짧은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사람이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루틴을 시작했다.
커피한잔과 함께 새로운 책을 꺼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주말에 새로운 독서를 시작했을 텐데 지난 주말 의도하지 않은 일탈의 여행이 나의 루틴을 잠시 흔들어 놓고 말았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마음먹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그래도 내 안의 작은 결심은 그렇게 조용히 다시 시작되었다.
그 시작의 상징으로 고른 책은 오래전부터 준비해두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해왔다.
고전 철학의 정수이자, 인간관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기록이라고 했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책이었고, 오늘 에서야 그 첫 페이지를 펼쳤다.
왕이 쓴 일기라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권력을 쥔 이가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써 내려간 문장들과 거대한 제국을 이끌던 이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써 내려간 글을 읽어 내려갔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문장은 오래되었지만 생각은 낡지 않았다.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혼란과 갈등, 그 안에서 중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책 속에 기대어 보았다.
책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완독 후에 정리해보기로 했다. 무언가를 끝까지 읽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기에, 그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써보려 한다.
오전에는 책을 읽었다. 이번 주에도 운동과 웨이트는 건너뛰기로 했고 오늘의 영상에서는 한 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제목은 청소력.
단순히 청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그 개념은 넓고 깊었다. 주변 환경의 정돈을 넘어 인간관계, 심지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청소를 해석하고 있었다.
오늘 영상은 평소처럼 하대 작가가 혼자 진행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책의 저자인 마쓰다 미쓰히로가 ‘줌’으로 출연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 형식이었다. 화면 너머로 그가 전하는 말들이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려왔다.
영상을 마치고 문득 눈 앞에 보이는 책상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정돈된 삶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돌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잃고 있었다.
처음 서재를 만들던 날의 정갈함은 사라지고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한 기운이 감돌았다.책상 위에 무심코 올려놓은 물건들, 언제 썼는지 모를 메모지, 의미 없이 붙어 있는 포스트잇들이 눈에 들어왔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책상 위를 정리했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리고, 자주 쓰지 않는 것들은 서랍 속으로 밀어 넣었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다른 자리로 옮기자, 그 자리에 여백이 생겼다. 그리고 그 여백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실 정리라는 건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행위를 넘어선다. 삶을 잠시 멈추고,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이다.
어떤 물건이 왜 그 자리에 놓여 있었는지를 곱씹다 보면, 마음속에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버릴 것을 골라내고, 남길 것을 결정하는 그 일련의 과정은 내가 어떤 기억을 붙잡고 살아가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어수선했던 공간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듯,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자리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정리는 단지 치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걸, 오늘 다시 배운다.
간단한 점심을 챙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청소’라는 단어가 단순히 생활의 필요를 넘어 존재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정리된 공간 위에서 청소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간단한 점심을 챙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자 ‘청소’라는 단어가 단순히 생활의 필요를 넘어 존재의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정리된 공간 위에서 청소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리에 대한 글을 쓰고 책상도 정리되고 나니 머릿속도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말동안 미뤄진 나의 루틴을 다잡고 하루를 이어나갔다.
낯선 곳에서 주말을 잘 보낸 아들이, 오늘은 포항으로의 첫 출근을 마쳤다. 괜스레 마음이 쓰여 연락을 해보았다.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차분했고, 그저 “잘 출근했다”는 짧은 말에 안심이 들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포항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백령도에서 나올 때 그렸던 도시의 이미지, 시설, 숙소, 분위기 등 모든 것에 대해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말끝에 담긴 작은 실망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오히려 그 솔직함에 더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를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더 이상 앞서 걱정하거나, 크고 무거운 조언으로 덮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걸, 그 짧은 통화 속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특별한 조언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가볍게, 그러나 마음을 담아 말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뿐이야. 단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반대로 장점도 분명히 존재해. 그 장점을 보려고 조금만 노력하면, 아마 백령도보다는 더 지내기 수월할 거야.”
그 말이 위로였는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을 확인해주는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조용히 “네” 하고 대답했다.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걱정을 키워주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는 자라 있었고, 이제는 환경보다 스스로의 시선을 조정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결국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거기까지다. 묻지도 말하지도 않아도, 잘 지내고 있다는 말 한 마디에 하루가 다 채워진다. 그렇게 오늘도, 말보다 마음으로 확인한 성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