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51일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감각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조용히 감쌌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그 중간의 감정이 오히려 더 낯설었다.
창가에 멈춰 선 채 동편 하늘에서 올라오는 해를 바라봤다. 날이 밝는 장면은 늘 똑같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매일 다르다.
날씨나 시간보다 내 안의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 먼저였다. 외부의 환경은 늘 변하지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제목: 기도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명상을 마친 뒤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 앉는 일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오랜만'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했다. 그냥 잠시 멈춰 있었던 시간일 뿐이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 펼친 책은 <위대한 게츠비>. 한 달에 고전 두 권을 읽기로 한 약속은 5월의 불안한 일상에 밀려 지켜지지 못했다. 그 사실이 아쉽기보다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는 행위가 더 중요했다.
이 책은 디카프리오가 나온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지만,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책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먼저 이미지를 주입 받지 않은 상태에서 활자 그대로 이야기를 만나는 일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던 중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포항에 있는 둘째가 지금 막 출발한다는 소식이었다. 포항에서 대구까지 혼자 운전해오는 첫 장거리 주행이었다.
면허를 딴 지는 오래되었지만, 섬에서만 운전해온 둘째에게 이번 여정은 낯설고 조심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길은 언제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더 걱정이 많았던 쪽은 나였다. 도로의 위험보다도, 처음 마주하는 환경 앞에서 불안이 그의 마음을 흔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건 눈앞의 상황보다도 마음속의 상상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둘째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차분하게 대구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 걱정은 실제보다 마음속에서 더 크게 자란다는 것을 오늘 또 한 번 배웠다.
예고 없이 자란 염려는 그 자체로 나를 소모시킨다. 실제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단단하고 조용하다.
도착한 둘째는 짐을 차분히 정리했고, 나는 점심을 준비했다. 어제 남겨두었던 간장게장과 김장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특별한 재료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아니었지만, 함께 앉은 식탁은 오랜만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소파에 앉아 과일을 나눠 먹었다. TV에서는 사전투표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어제 우리 모두가 사전투표를 마친 터라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대화로 이어졌다.
아이들과의 투표 이야기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담담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하나 나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이들이 우리와 비슷한 정치적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란 아이들이기에 별다른 의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 그 생각은 아주 단단하게 흔들렸다. 그들의 정치적 견해는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특히 첫 투표를 한 막내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또렷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단순한 흥미나 외부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으로 내린 결론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말투와 표정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그것이 더 놀라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 말이 막혔다.
놀라움과 당혹감, 그리고 아주 미세한 거리감이 조용히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짧은 대화가 끝나자, 나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정해놓고 있던 원칙이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피해야 할 이야기, 세 가지. 종교, 지역, 정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 주제들은 너무 쉽게 누군가의 신념을 건드리고, 때로는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긴다. 가족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대화를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 정치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테이블에서 치워졌다. 말은 거기까지였지만, 대화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남은 잔향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부모의 생각을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 변화는 목소리로 들리기보다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퍼지는 파문처럼 다가왔다.
누군가의 성장이라는 건, 결국 익숙한 세계를 떠나는 순간에 더 가까이 있었다. 대화를 마친 뒤,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토요일 오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인근 마트에 들렀다.
오랜만에 집에 온 둘째를 위해 그의 입맛을 떠올리며 장을 봤다.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들을 중심으로 장바구니가 채워졌다.
아이가 집에 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동반한다. 사소한 채소 하나까지도, 평소보다 신중해진다.
저녁 식탁에는 포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대한 푸념이 올라왔고, 백령도에서의 군 생활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더해졌다.
3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낸 둘째는 이미 그곳에서 중견 간부가 되어 있었다. 조직의 공기와 구조를 받아들이며, 때로는 그 흐름을 따르며 적응한 흔적이 말투 곳곳에 묻어났다.
그 안에 묘하게 스며든 꼰대의 기질도 감지됐다. 성장이라는 것이 때때로 그런 방향으로 스며든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범한 식탁 위에 놓인 반찬들 사이로 웃음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은 각자의 삶이 조금씩 겹쳐졌다. 일상이 잠시 멈추고,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의미가 되는 저녁이었다.
하루의 끝,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나면 집 안은 다시 고요해진다. 낮 동안의 말들과 표정들,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이 천천히 가라앉는 시간.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오늘 하루는 내게 조용한 파문을 남겼다. 아이들의 생각이 자란다는 것, 익숙한 존재가 낯선 결을 드러낸다는 것, 그리고 함께 나누는 식사 한 끼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간다. 아주 사소한 일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날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듯한 하루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작고 단단한 조각이 하나 더 놓였다.
그 조각이 쌓여, 언젠가 지금의 나를 또 지나가게 만들겠지. 그렇게 나는 또, 오늘을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