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독서를 마친 후 창문을 열었다.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했지만 따가운 햇살이 들이치지는 않은 나름 조용한 날씨였다.
창문 밖에서 도시의 소음과 함께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그리 시원하진 않았지만 잠시 멈춤을 선택한 내 일상에는 그마저도 위로가 되었다.
페달을 밟는 일 대신 오늘은 앉은자리에서 눈과 귀로 시간을 채워보기로 했다.
오늘 내가 시청한 영상은 얼 나이팅게일의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를 다룬 것이었다. 나이팅게일의 메시지는 언제나 단단하고 명료하다. 그중에서도 오늘 나를 멈추게 한 문장은 이러했다.
“성공으로 나아가는 연료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헌신’입니다.
헌신 없이 성공은 없습니다.
성공에 100퍼센트 헌신하기로
‘기꺼이’ 마음먹은 분들은
건너뛰기를 누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진흙 밭을 기꺼이
통과하려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 ‘헌신’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자산의 목표에
제대로 어울리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헌신.
이 단어는 이상하게도 나에게 오래된 이미지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삶. 누군가의 배경으로 존재하기를 자처한 누군가의 태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기꺼이 자기 자신을 지우는 사람의 모습. 헌신은 늘 타인을 위한 것처럼 여겨졌다. 희생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포기와도 헷갈리는 단어였다.
하지만 오늘 그 단어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이팅게일이 말한 헌신은 단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간절함에서 비롯된, 자신을 향한 태도였다.
진흙밭을 기꺼이 통과하려는 마음. 결국 이 말은 ‘나’의 목표를 향해 내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진짜로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고단함을 감수한다.
건너뛰기를 누르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그게 헌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헌신은 희생이 아니라 성장의 선택이다. 간절함을 현실로 데려오기 위한 집중의 자세다. 나의 삶에서 헌신은 무엇이었나 되묻게 된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음’을 헌신이라고 믿어온 듯하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본다.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표에 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고 조율하는 행위. 그것이 헌신이다.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의 몸, 나의 건강을 떠올리게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병이라는 이름의 시련을 마주했을 때의 태도다. 누구나 병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다 보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병은 삶을 단단히 흔든다. 그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병에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 병을 넘어서는 삶을 다시 살아낼 것인가.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긍정이나 희망이 아니다. 바로 ‘헌신’이다. 나의 회복을 위해,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 매일같이 쌓아올리는 의지의 반복.
식욕이 없어도 먹고, 몸이 무거워도 움직이고, 기운이 없어도 마음을 붙잡는 그 모든 일들. 그것이 병 앞에서의 헌신이다.
여기서 말하는 헌신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철저히 나를 위한 다짐이다.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행동의 지속이다.
단지 병을 이겨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병을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더 단단하게 다시 세우려는 의지의 형태다.
회복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느리게, 때로는 답답할 만큼 더디게 찾아온다. 그리고 이 느린 시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음’이 아니라, 나에게 정직하게 집중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태도다.
고통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나를 위한 선택을 반복하는 일. 그것이 병을 이겨내는 헌신이다.
나는 이제 안다. 병을 이기는 힘은 병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심에서 비롯된다. 다시 걷기로. 다시 웃기로.
다시 살아내기로. 병을 이기는 의지는 결국 스스로를 믿고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마음에서 자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실제 삶 속에서 반복하는 실천이 바로 헌신이다.
그렇다면 헌신은 어떻게 나의 병을 이겨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태도의 변화다. 병은 우리의 몸뿐 아니라 마음을 가장 먼저 흔든다. 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때 헌신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병을 이겨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를 아끼고 돌보는 일에 전념하겠다. 이 마음이 생기면 그때부터 병은 단지 '참아야 하는 고통'이 아니라 '돌파해야 할 과제'로 다가온다. 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치료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두 번째는 일관된 실천이다. 치료는 단발적인 의욕으로 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지시받은 식이요법을 따르고, 재활운동을 반복하는 일은 지루하고 고단하다.
그러나 헌신이 있는 사람은 이 과정이 단지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살아내게 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안다.
일상의 리듬 안에 치료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그에 맞춰 삶을 재정비하는 태도. 이게 바로 헌신의 실천이다.
세 번째는 내 안의 회복력을 믿는 마음이다. 헌신은 외부로부터 동기를 얻기보다, 스스로를 끝까지 지지하는 내부의 확신에서 나온다.
병을 이겨내는 여정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외롭다. 누군가의 응원도 힘이 되지만, 결국은 내가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힘이 가장 오래 간다.
이 자기신뢰가 지속되는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곧 면역이 되고, 회복이 된다.
병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병을 겪으며 우리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틈에서 삶을 다시 설계한다. 덜 바쁘게, 덜 무리하게,더 본질적으로. 이 재설계의 과정이 바로 헌신이 향하는 지점이다.
병을 극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후의 삶을 더 단단하게 살아내겠다는 다짐. 헌신은 이 다짐에 힘을 싣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헌신’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헌신은 단단함 삶을 위한, 삶의 재구성의 필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