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창 너머 저 멀리 산에서 밀려든 맑은 공기가 방 안을 통과해 책상 위의 종이와 전선, 그리고 플라스틱 부품들 사이를 천천히 어지럽혔다.
거실 밖의 커다란 창문은 그 길을 더 크게 열어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가만히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며 영상을 틀었다.
오늘도 아침 독서를 마친 뒤, 귀와 눈을 씻는 기분으로 듣고 본 것은 얼 나이팅게일의 <위대한 성공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내 마음에 새겨진 한 문장.
“인간에게 의심은 늘 분노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여지없이 무언가를 시작해서
괜한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시작하기 전에 의심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니 이와 반대로 한 사람들은
반드시 성공한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의심.
의심은 생각의 시작이다. 그러나 동시에 실천의 중단이기도 하다. 인간은 상처를 두려워하는 존재다. 실패로부터 오는 상처는 때로 체념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간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의심을 택한다. 실패를 경험하는 것보다, 그 실패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품고 멈춰서는 쪽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즉 의심은 자기를 보호하려는 심리의 최전선에 있다.
하지만 의심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든다. 뇌는 가능성보다는 생존에 더 반응하는 기관이기에, 위험이 될 수 있는 미래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동을 억제한다.
그때 의심은 도구가 아니라 족쇄가 된다. 가능성을 가로막고, 시작이라는 문을 닫아버리는 감정이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 건 이런 종류의 의심이었다. 나는 건강을 회복하는 길 앞에서도 ‘괜찮아질까’라는 의심을 품고 주저했다.
새로운 루틴을 세울 때도,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책상 앞에 앉아도, 이 시간이 진짜 의미 있는 걸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이 작은 균열들은 결국 내가 무엇을 시도하든 그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문장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의심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길이지만, 그 자체로 실패를 고정시키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심 없이 시작하는 것은 무모함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믿음의 선언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안다. 의심은 실수보다 더 무섭고, 실패보다 더 지독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실패는 되돌릴 수 있고, 실수는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의심은 시작 자체를 없애기 때문에 나를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의심은 나를 지키는 방어막인 척하지만 결국은 내 성장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막아서는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심을 줄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판단을 늦추는 대신 행동을 앞세우는 습관.
의심이 고개를 들 때, 그것이 나를 멈추게 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단지 내가 두려운 것인지 자문해보는 시간. ‘해보자’라는 말보다 강력한 반박은 없다.
의심이 들 때 우리는 먼저 그것이 경고인지 회피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의심은 분명 경고다.
나에게 무리한 선택을 하려는 순간, 내면의 작은 목소리가 ‘잠깐만’ 하고 멈추게 할 때가 있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신호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심은 두려움을 위장한 회피에 가깝다. 실패 할 까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서, 이런 감정이 의심을 만들어낸다면, 그때는 이성보다는 행동이 앞서야 한다.
의심이 고개를 들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작게 시작하는 것이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보다, 한 줄을 먼저 그어보는 일.
실패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도를 실행에 옮기는 것. 작은 행동은 의심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의심은 멈춰있는 사람에게만 커진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의심은 곧 사라진다. 또 하나, 의심은 혼자일 때 더 자란다. 고립된 판단은 불안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나는 의심이 들 때 사람에게 묻는다.
나를 지지해줄 사람, 나보다 앞서 걸어본 사람, 혹은 내 안의 또 다른 목소리와 대화한다. 의심을 말로 꺼내놓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다.
결국 의심은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다스려야 할 감정’이다.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연습. 그 훈련이 결국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작은 한 걸음이 모든 의심을 이긴다.
나는 오늘 ‘의심’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의심은 분노보다 덜 아프지만 더 오래 나를 가두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