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여름밤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열어둔 창문 너머로,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주차장의 요란한 엔진 소음에 눈을 떴다.
어제의 긴 하루가 아직도 몸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걸까. 아침부터 이어진 지하철, 기차, 다시 지하철과 셔틀버스의 반복. 긴장과 피로, 그리고 진료실에서 마주한 현실.
분명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는데도, 몸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온몸을 조이던 긴장감이 풀어지자, 근육과 신경의 이완이 오히려 새로운 중력을 만들어낸 듯했다. 그 무게를 이겨내고 일어서는 데에, 아침은 조금 더 많은 의지가 필요했다.
창가에 섰다. 이미 날이 밝았고, 새벽의 바람은 거의 사라진 뒤였다. 그 희미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며, 안으로 남아 있는 불안과 피로를 조금씩 밀어냈다.
그렇게 호흡으로 몸을 씻고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이라 부르기엔 짧고 조용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바람보다 더 가벼운 기도를 올렸다.
오늘 아침의 명상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어제 하루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였다.
그 순간, 문득 내 몸 속에 존재하는 검은 덩어리를 떠올렸다. 불안과 두려움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던 그 존재에게도 처음으로 감사라는 감정을 전했다.
나를 집어 삼켜서 어둠의 땅 속으로 데려가려고 찾아온 무서운 괴물인 줄 알았던 녀석. 그러나 그중에서 나름 착하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는 것에 말이다.
또한 단지 그것이 '암'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몸이 보내는 어떤 신호이자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싸움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회유와 이해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그 검은 존재도 결국 나의 일부라면, 내 안의 긍정적인 세포들과 함께 어우러져 변화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선전포고도 없이 나에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잠시 밀렸던 내 몸속 치유의 세포들이 활동을 시작하면 검은 괴물도 충분히 우리편으로 포섭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 말이다.
방사선 치료까지는 아직 약 2주.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몸을 잘 먹이고, 잘 쉬게 하며, 긍정의 세포들을 하나씩 키워갈 것이다.
책에서 읽은 수많은 기적들은 먼 이야기 같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기적이란, 막연한 기도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다짐들이 쌓인 끝에서 비로소 찾아오는 것일지 모른다.
조용한 서재에 앉아 짧은 독서를 마친 뒤, 삼성서울병원 인근 요양병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젯밤 아내와 딸과 함께 식사를 하며 치료 계획을 논의했고, 결국 방사선 치료는 서울에서 받기로 결정했다.
실질적으로 아내는 출근과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병행할 수 있지만,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 내 곁을 온전히 지켜주는 것까지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서적으로도 그 시간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치료 기간인 6주 동안 병원 근처의 요양병원에 머물기로. 아직 시간은 남았지만, 오는 18일 병원에 다시 가기 전까지 요양병원을 충분히 알아보고 사전 예약까지 마무리하려 했다.
정보를 수집하던 중, 환우 커뮤니티를 통해 삼성서울병원의 '파트너스센터'라는 곳에서 요양병원을 추천해주고 일정에 대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나 첫 통화는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상담원과 연결되었고, 주치의의 신청서와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까다로운 절차였고, 담당의가 써준다는 보장도 없고, 또한 소개라기 보다는 리스트를 주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받은 도움, 보이지 않는 손길의 배려들이 하나둘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이 순간, 문득 이 나라가 참 따뜻한 곳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 시스템, 이 공감, 이 연대의 정서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몸으로 체감하는 하루였다.
그래서 나 또한, 그 고마움을 돌려주기로 했다. 내가 받은 것들을 그저 고이 간직하는 대신, 다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로.
내가 겪은 과정과 감정, 그리고 작은 희망의 조각이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우 카페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 글이 나처럼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을 안고 있는 누군가에게 미력하게 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오후엔 영대병원으로 향했다. 삼성서울병원 측에서 요청한 조직검사 결과를 추가로 전달 받기 위해서였다. 사실 처음 요청할 때 충분히 설명을 하고 모든 자료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담당 간호사의 실수로 슬라이드 하나가 누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삼성병원에서는 그 누락된 슬라이드를 다음 진료 때 꼭 가져오라고 했다.
솔직히,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 분노를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목소리를 높이고, 책임을 묻고,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 들었던 희망적인 진단, 그리고 곁에서 조용히 전화를 듣고 있던 딸의 존재가 나를 다르게 만들었다.
나는 말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직접 가지러 갈게요.” 마치 순한 어린양처럼, 아니, 양의 탈을 쓴 천사처럼.
그 말은 단순한 응답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독이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분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치유의 방향으로 돌려보내는 선택.
나를 치유하는 것은 오직 의사의 처방만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는 태도, 내가 쌓아가는 마음의 반응,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의 하루하루도 분명히 치유의 일부였다.
그렇게 다시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단지 슬라이드 하나를 받기 위한 길이었지만, 이 길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2주 전, 내과의 구두 진단을 받고 편도암이라는 단어를 처음 마주했던 날, 터벅터벅 병원문을 나섰던 그 걸음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오늘의 나는 두려움보다도 감사를 안고 있었고, 발걸음은 그만큼 가볍고 단단했다. 이비인후과에 들러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를 기억해준 간호사는 눈에 띄게 미안한 얼굴로, 슬라이드가 누락된 것에 대해 거듭 사과를 전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 말 속엔 어쩌면 나조차 다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서류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결과가 좋게 나와서 정말 다행이세요. 이런 말씀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축하드려요.”
그 말에 나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더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간호사가 말을 보탰다. “저희 어머니도 암이셔서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요. 모든 감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 고통, 상상은 가요. 그런데 제 실수로 이렇게 두 번이나 번거롭게 오셨는데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차마 미소로는 감당되지 않는 감정이 목끝까지 밀려올랐다. 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익숙한 통제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 자리에 조금만 더 서 있었다면, 말도 없이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애써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서류를 받아 조용히 돌아섰다.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덧붙였다. “서울에서 치료 잘 받으셔서, 꼭 완치되세요.”
그 말이 등을 타고 조용히 내려와 마음 깊은 곳을 두드렸다. 결국 나는 고개를 숙이고 병원을 나섰다. 고맙다는 말조차 삼킨 채, 낯선 병원의 낯선 복도 위로 붉어진 눈시울에서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건 평생 잊지 못할 눈물이었고, 아주 조용하지만 깊게 각인된 위로였다. 지하철로 향하는 길, 슬라이드를 품에 안고 천천히 걷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는, 이 사회는 아직 따뜻하다. 때때로 거칠고 냉정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 조용히 마음을 건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 매일 내 글을 읽고 조용히 응원을 보내주는 이들, 어쩌면 내가 써내려간 문장들이 어둡고 무거울지라도 오히려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 나에게 건네주는 사람들.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내 아픔을 위해 조용히 용기를 빌어주는 마음들.
자신의 소중한 시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한 편을 아낌없이 떼어내어 나에게 내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 이 땅이 여전히 따뜻하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모니터 너머, 혹은 낯선 병원 복도에서 스쳐간 짧은 말 한마디, 작은 배려 하나가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배운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온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이 나라는 여전히 따뜻하고, 믿을 수 있고,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이제 나는 조금씩 알 것 같다. 치유는 치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치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온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따뜻할 수 있다는 가능성, 바로 그 희망의 증거였다.
나는 그 따뜻함을 품에 안고, 아주 조용히, 그러나 든든하게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