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절망속에서 들려온 희망의
목소리를 들었다.

난 오늘 모든 것에 감사했다.

by 마부자

몸 안에 감돌던 검은 기운을 이제는 밀어내기보다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결심 덕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스스로 감지하고 있는 결과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서울 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전날 밤, 예전 같았으면 뒤척이며 밤을 새웠을 시간에 나는 의외로 고요한 마음으로 시간을 건넜다.


아침 출근길의 아내는 평소보다 더 무거운 표정으로 현관을 나섰다. 병원에 동행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하향 버튼을 눌렀다. 밝은 얼굴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 말에 아내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 웃음에 마음을 다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짧은 인사 속에 서로의 마음을 담았다.


혹시 오늘 받을지도 모를 PET-CT와 MRI, 아직 남아 있는 검사를 생각하며 가벼운 짐을 쌌다. 수술도 아닌, 단지 검사를 위한 입원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챙긴 짐인데도 이상하게 짐보다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인데도 마음은 자꾸만 앞서 나갔다. 가방 안에는 검사 결과지들과 슬라이드, CD 몇 장을 차곡차곡 챙겼다. 그 자료들을 꼭 쥔 손끝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두려움과 막연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렇게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서울은 여전히 멀었고,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딸은 집에서 곧장 동대구역으로 오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플랫폼 벤치에 앉아 기차역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장소였지만, 이상하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엔 일 때문에, 한 달에도 몇 번씩 이 자리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출장을 가기 위해, 또는 돌아오기 위해 익숙하게 오르내리던 계단, 늘 같은 위치에 멈춰 서 있던 기차.


그런데 단지 이유가 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그 풍경이 마음에 박히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눈앞의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간판,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플랫폼의 공기조차 오늘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마음속의 불안이 투명하게 퍼져,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후 딸이 도착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말없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가 움직이고,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자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 보려 했지만, 목차를 대충 훑은 뒤, 조용히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두 시간 남짓, 동대구에서 수서까지의 시간 동안 머릿속을 스치는 건 의사에게 해야 할 질문들이었다. 무엇을 묻고,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할지 생각해봤지만, 오래지 않아 그 모든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결국은 묻는 것이 아니라, 듣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걸. 그리하여 묻는다는 행위조차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서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갈아타고 일원역까지 이동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서울의 날씨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대구에서 올라온 우리였지만,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무색할 만큼 서울 도심의 열기는 피부에 바싹 와닿았다. 한여름의 햇살처럼 뜨겁고 매서운 기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지하철 출구 옆 버스정류장에서 병원 셔틀버스가 막 도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머뭇거리다 줄 맨 끝에 조용히 섰다.


순환버스가 8분마다 병원과 수서역, 일원역을 오간다는 안내 문구를 보고 놀랐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짜여진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버스 안에 이미 가득 찬 사람들의 수였다. 모두가 같은 목적으로, 어쩌면 비슷한 불안과 긴장을 안고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병원에 도착하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 내부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나는 '상급병원은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하기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라는 단순한 예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병원은 이미 누군가의 하루와, 또 다른 누군가의 불안을 담고 버거울 만큼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는 기다림으로, 또 누군가는 통보받은 사실로, 또 다른 누군가는 막연한 희망으로 이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다들 사연을 가진 채 조용히 줄을 서고 앉아 있었고, 그 침묵 속에는 말보다 깊은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이비인후과 진료실 앞, 무표정한 얼굴들 사이에 딸과 나도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예약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순번을 기다려야 했고, 그 기다림은 생각보다 무겁고 고요했다.


마주 앉은 사람들의 손에 들린 서류 봉투, 슬라이드가 담긴 작은 케이스, 그리고 정리된 검진 결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익숙한 모양새였고, 나는 그 낯익은 서류들을 들고 있는 손끝의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 역시 나처럼 ‘암’이라는 단어와 마주한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면 조금 먼저 알게 되었거나, 나보다 조금 늦게 진단을 받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 순간, 다시 떠오른 생각은 늘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피할 수 없이 드는 그것이었다. ‘세상에 정말 아픈 사람이 많구나.’ 이 단순한 문장은 병원에 올 때마다 불쑥 다가왔다가, 진료실 문이 열릴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부모, 조용히 손을 맞잡고 앉아 있는 노부부, 불편한 침묵 속에 함께 앉아 있는 부녀, 모자, 그리고 혼자 온 수많은 사람들.


누구 하나 말은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흐르는 감정의 결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한 풍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만 아픈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안도라고 말하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위안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마음.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각자의 불안 속에 묶인 채로.


예약 시간보다 삼십 분쯤 지난 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병원 진료실이라는 공간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상하게 오늘의 그 내부 공기만은 유독 차갑고 낯설게 느껴졌다.


수없이 드나들던 공간이었건만, 오늘은 뭔가가 달랐다.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을까. 얇은 반팔 소매 위로 돋아나는 소름은 단순한 기온의 문제가 아니었다.


긴장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이 피부 위로 조용히 기어올랐다. 의사의 책상 앞에 앉기까지의 그 짧은 걸음은, 마치 오래된 필름을 되감는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의 손끝, 모니터에 비친 내 목속의 모습은 이미 수차례 봐온 이미지였지만, 오늘 따라 더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익숙한 소독약 냄새, 옆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까지도 오늘은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의사의 옆모습.


그는 한참 동안 내 자료를 바라보며 침묵했고, 나는 그 입에서 나올 첫 문장을 기다리며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그 몇 초는, 아마도 이 병원 안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시간일 것이다.


“편도암은 맞으시고요. 현재까지 해오신 검사 결과를 보면… 다행히 이 암은 치료 반응이 굉장히 좋은 종양입니다. 수술도 항암도 필요 없을 것 같고요. 바로 방사선 치료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났지만,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떠 있었다. 딸도 나도, 그 표정에 잠시 당황했다. 암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문장 뒤에 이어지는 말투가 너무도 가볍고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되물었다. “치료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6주간 주 5일, 총 30회 치료를 하셔야 해요. 그리고 이 편도암은 치료하면 95% 이상 완치가 되는 병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딸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6주 치료가 끝나면 95% 완치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방사선 치료가 끝날 즈음이면 거의 완치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치료 계획만 잘 세우면 됩니다. 입원이 아닌 통원 치료를 해야하니 일정을 잘 잡으셔서 치료 잘 받으시면 됩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음 한가운데 있었던 무거운 돌덩이가 조용히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더는 묻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암’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단어가 더는 모든 걸 집어삼킬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의사는 마치 감기 진단을 내리듯 웃으며 말을 마쳤다. 그리고 일정은 간호사와 상의하라고 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진료실 문을 나섰다.


문 밖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그럼 치료 전엔 음식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요?”

의사는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답했다. “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드세요.”


그 말이 전부였다. 딸과 나는 진료실 문을 나서며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빛 속에 담긴 황당함과 실소가 마주친 순간, 둘 다 말없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안도의 숨이었고, 그 숨결 너머로 슬쩍 번지는 웃음을 우리는 동시에 확인했다.


분명 암이라는 단어를 또렷이 들었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수술도, 항암도 필요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절반쯤은 회복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전신 PET CT 검사가 남아 있었고, 완치라는 단어가 명확히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덜덜 떨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 컸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나는 세상이 무너질 듯한 긴장과 초조함 속에 앉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 그러나 이미 어딘가에서는 각오하고 있었던 마음, 그 복잡한 심정이 한꺼번에 뒤엉켜 있던 시간.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똑같은 병원 건물 안, 똑같은 복장으로 앉아 있지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이란 그렇게, 아주 작은 말 한 줄에 의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다. 그 순간 절실히 느꼈다.

걱정이란 건 결국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와 현재를 소모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와 상담을 했다. 보통이라면 PET CT 결과를 본 뒤 항암치료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현재 상태로는 방사선치료를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전해 주었다.


6월에 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였고, 전신 PET CT는 6월 18일로 예약되었다. 그날, 치료 일정까지 모두 확정짓기로 했다. 우리는 천천히 병원문을 나섰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세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눈부신 태양을 내리꽂고 있었고, 그 햇살은 마치 뜨거운 불화살처럼 피부를 찔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그런 뜨거움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틈틈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내 곁을 감싸며 조용히 말 걸어오는 듯했다. 괜찮다고, 오늘은 잘 지나가고 있다고.


잠시 대기한 끝에 병원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노선표를 바라보니, 수서역까지도 운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올 때는 지하철을 타고 일원역으로 이동했지만, 돌아갈 때는 그럴 필요 없이 곧장 수서역에서 하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덜 힘든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주 작은 위안처럼 느껴졌다.


수서역에 도착하자마자 동대구행 기차를 확인했다. 다행히 4시 30분 출발 열차가 있어 곧바로 예약을 마쳤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 종일 비워두었던 뱃속이 격렬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검사를 할까 봐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그 허기는 더욱 극적으로 밀려왔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긴장된 마음에 눌러두었던 허기가, 진료가 끝난 후 풀어진 마음과 함께 들이닥친 것이다.


마치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우리 두 사람은 곧장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딸이 말했다.


“지금 많이 먹으면 저녁에 못 먹을 테니까 간단히 샌드위치로 하자.”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우리는 수서역 근처의 서브웨이로 향했다.


평소에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던 패스트푸드였지만, 오늘만큼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치료가 시작되면 이런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으라’던 의사의 말은 단순한 조언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서브웨이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딸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햇살은 여전히 강렬했지만,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샌드위치의 소스 맛이 어쩐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평범한 한 끼였지만, 그 순간만은 왠지 아주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기차에 올랐다. 천천히 움직이던 열차가 점점 속도를 높이며 차창 밖 풍경을 빠르게 스쳐갈 때, 나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올라올 때는 단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활자들이, 이제는 마치 평소보다 두 배쯤 커진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뭔가가 정리된 마음에는 비로소 단어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기차에서 내려 집 앞에 도착했을 무렵, 퇴근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과 함께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셋이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나를 위해 고생한 딸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시작될 치료에 대비해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자는 의미로, 우리는 인근의 한우집으로 향했다.


아직 치료는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6주라는 시간 동안의 방사선 치료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닐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미래의 고통을 미리 끌어당겨 오늘을 흔들지 않기로 했다. 걱정은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라고,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러 향후 치료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딸은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씻고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하루를 되짚어본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았던 감정은 딸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고작 몇 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사였다.


분명 딸도 두려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병, 암이라는 단어, 진료실의 공기, 그런 모든 것들이 어린 마음엔 감당하기 어려웠을 텐데, 정작 나보다 더 담담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대신 물어주고, 때로는 먼저 미소를 지어주던 그 모습은 내가 몰랐던 딸의 새로운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다 담아내지 못할 ‘가족’이라는 이름의 깊이를 다시 깨달았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누군가의 온기가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다.


그렇게 하루의 끝에 도달했다. 낯선 병원, 익숙하지만 달라진 기차역, 쏟아지는 햇살과 서늘한 바람, 암이라는 단어와 마주한 순간, 그리고 그 단어를 견디게 해준 가족의 존재까지. 오늘은 긴 하루였고, 동시에 깊은 하루였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치료 앞에 서 있지만, 더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두려움은 길어야 소용없다는 것을, 걱정은 현재를 갉아먹을 뿐이라는 것을, 오늘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딸의 손길, 아내의 눈빛, 셋이 마주 앉아 나눈 한 끼의 저녁.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결코 병원 방문에만 머무는 날이 아니었다.


삶은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 아픔 속에 기쁨이 있고, 두려움 속에 다정함이 스민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고맙고, 무거웠고, 다행이었던 하루.


난 오늘 이 모든 순간 그리고 모든 이들, 모든 감정에 무한한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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