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 꿀잠을 잔 탓인지, 아니면 눅눅한 공기 때문인지 좀처럼 깊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고, 몸을 일으켜 간단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내리던 비는 소강상태였고, 창밖은 온통 잿빛 구름과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명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어젯밤 완독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 대해 천천히 글을 써내려갔다. 하루를 시작하는 평범한 루틴 같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
국립 대전 현충원.
아내와 딸, 그리고 포항에서 올라오는 둘째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그곳을 찾기로 했다. 해마다 현충일을 앞두고는 꼭 다녀왔지만, 올해는 내 건강 문제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내 동생이 잠들어 있다. 1977년생. 나보다 네 해 뒤에 태어난 동생.
우리는 서로에게 유난스럽진 않았지만, 어딜 가도 형제라 부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닮은 구석이 많았다. 서로 각자의 청춘에 빠져 있을 무렵, 어느 날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
운전병으로 군 복무 중이던 동생이 훈련 도중 후진하던 전차에 사고를 당했다는 말. 그해 가을, 경기도 연천. 당시 스물하나의 동생은 함께 동승해 있던 선임장교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때 동생은 스물 하나, 나는 스물다섯.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나이였다. 슬픔도, 그리움도, 죄책감조차 아직은 가물가물할 만큼 서툰 청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생이 더 많이 생각나는 건, 아마 그 시절 내가 제대로 슬퍼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주지 못한 말들이, 손 한번 더 잡지 못했던 기억들이, 자꾸만 마음을 저리게 했다.
아내도 동생을 안다. 연애 초반 함께 면회를 갔었고, 동생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도련님이 당신보다 열 배는 잘 생겼어. 착하고 성격도 좋고. 솔직히 먼저 봤다면, 나 도련님하고 결혼했을지도 몰라.”
아내의 장난기 섞인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웃으면서도, 그 말 속에 스며든 그리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느꼈다. 매년 한 번, 우리는 동생을 찾아간다. 몸은 대전 땅속에 잠들어 있고, 마음은 하늘의 별이 된 그 아이에게.
우리는 대구에서 차로 출발을 하고 아들은 포항에서 기차로 대전역으로 출발을 했다. 거센 빗줄기가 우리의 길을 안내했다.
빗속으로 가는 길 날은 흐렸지만, 그 흐림 속에서 내리는 빗물은 차갑지 않게 느껴졌다. 오히려 묘하게 시원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마치 오늘만은,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빗소리였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둘째는, 일부러 그랬는지 해병대 정복을 입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정복 차림의 아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한 사람의 ‘어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말없이 우산을 건네는 그의 손짓마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세월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거세고 그칠 줄 모를 것 같던 비는 우리가 현충원에 도착하자 어느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묘역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 앞에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아마도 동생이, 하늘에서 잠시 우리를 위해 비를 멈춰준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졌다.
예전에는 이곳에 오면 마음이 헝클어지고 눈물이 먼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감정은 달라졌다.
그의 묘역 앞에 서서 우리는 슬픔이 아니라, 감사와 위로 그리고 만남의 기쁨이 가득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묘역의 대지 위로 조용히 비가 내렸고, 내 안에 맺혀 있던 감정들도 그 빗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렸다.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코를 통해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고,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저 떠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하늘의 신과 함께 있는 동생에게 나의 건강을 부탁했다.
이기적인 기도가 아닐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요즘이었다.
짧은 참배를 마치고, 비에 젖은 묘역에 서서 우리 가족은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건넸다.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이었고,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위로였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내리는 빗줄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령들, 작은 석묘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영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득, 나는 깨달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존재는 해마다 이렇게 우리를 부드럽게 불러내고,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다정한 기도가 어우러진 이 하루가, 오래도록 내 안에서 잔잔하게 퍼져나가기를.
그렇게 그는, 오늘도 내 마음 한가운데 가장 따뜻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