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멈춘 그자리에, 누군가 우릴 대신하고 있었다.
주말 내내 비를 흘리던 잿빛 구름이 자취를 감추었다.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딱 그 사이 어딘가의 하늘이었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아 요란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오늘 아침의 알람이었다.
일찍부터 정신을 깨운 그 소리에 눈을 떴고, 젖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창가에 섰다. 도시의 숲과 건물, 대지가 밤새 흠뻑 적셔진 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짧은 명상을 했다.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다짐하듯이.
어제 집에서 잠을 잔 둘째는 부대로 서둘러 복귀하겠다고 했다. 밤사이 있었던 병사들 간의 가벼운 사고 때문이라고. 굳이 본인이 서둘러야 할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며 준비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성장의 그림자를 보았다.
내 아들은 이제 누군가의 상급자가 되었고, 그 무게를 책임이라 부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어제보다 더 어른이 된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기차를 타러 포항으로 내려가는 길, 동대구역까지 배웅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지하철이면 충분하다고. 나는 문 앞에서 그를 조용히 배웅했다.
아직 아내와 막내는 깊은 잠에 들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삶은 계란과 통밀빵, 두유로 혼자 조용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책장을 펼쳤다.
오늘부터 시작한 책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 나와는 기묘한 인연이 많은 작가의 이야기다. 막내에게 ‘아빠의 무지’를 들켰던 그 작품 속 두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참 후, 막내도 약속이 있다며 나섰고, 소란한 움직임 속에서 잠이 깬 아내와 함께 이른 점심을 먹었다. 주말 같지 않게 빠르게 흐르는 하루였다.
소화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연꽃습지로 향했다. 습한 날씨 탓에 벌레들의 공격이 걱정되어 한동안 멀리했던 곳이었지만, 아직 해가 기울지 않은 이른 오후의 습지는 다정했다.
머지않아 입원을 앞두고 있는 내게, 이곳은 당분간 마지막이 될 산책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기억해두고 싶었다.
아직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연잎은 어김없이 자라 있었다.
나보다 큰 키로 울타리를 넘어오는 연잎들. 자연은 해마다 거짓말 없이 제 존재를 증명해낸다. 가끔은 그 꾸준함이 부럽다.
산책로 중간쯤, 키 큰 연잎 사이로 솜사탕 같은 연꽃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두가 활짝 핀 건 아니었지만, 그 틈에서 핑크빛, 그리고 순백의 꽃들이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이미 활짝 피어난 꽃도 있었다. 올해는 못 볼 거라 생각했던 그 장면을 이렇게 눈에 담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의 산책은 느림의 미학으로 가득했다. 아내와 난 말 없이 손을 맞잡고 걸었고, 말 없이 같은 생각을 했다. 아마도 올해, 이 연꽃들을 보는 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우울하거나 흐리지 않았다. 오늘 본 이 풍경이, 나를 기다릴 앞으로의 계절에도 다시 피어 있을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걷고, 멈추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자연은 쉼표를 찍을 줄 아는 존재였고, 나도 그렇게 따라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스마트워치에서 알람이 울렸다. 만보를 채웠다는 알림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놀랍고도 황당한, 그리고 그 안에 신기함까지 묻어나는 웃음이 피어났다. “만보라니…”
참 사람의 몸이란 게 묘한 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뿐했던 발걸음이 그 숫자 하나를 본 순간부터 뚝 무거워졌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듯한 느낌.
시간을 보니 평소라면 아내가 퇴근했을 시각이었고,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그 발걸음 그대로, 우리는 인근 단골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거의 반 년 만에 찾은 그 가게. 술을 끊고 나선 발길이 끊겼던 탓이다. 사장님은 오랜만의 방문을 반가워하면서도 “요즘 왜 이렇게 안 보이셨어요?” 하고 물었다.
오늘은 긴 설명 대신 웃음으로 대답했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
예전 같으면 이틀에 한 번씩은 들러 해장했던 음식. 오랜만에 다시 맛보는 해장국은 여전히 익숙했고, 10년 넘게 변함없던 사장님의 손맛은 지금도 내 입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식당 건너편 테이블에선 노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해장국 두 그릇, 돈가스 하나, 그리고 소주 네 병. 그들은 잔을 부딪치며 조용히, 그러나 정겹게 술을 나누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었다. 아내가 말했다.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모습이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멈칫했다.
그래, 우리도 그렇게 한 병, 한 병 서로의 삶을 건네며 마시던 날이 있었다. 해장국만으로는 부족했을 안주를 대신하던 정사각형 돈가스. 그 한 조각에 소주 한 잔은, 그 시절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우리는 소주 없이 국물만 비우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런데 노부부가 소주 한 병을 더 시킨다. 다섯 병이면, 딱 기분 좋게 취할 양이라며 아내와 난 소리 죽여 웃었다.
뭔가를 빠뜨린 듯한 기분으로 식당 문을 나섰고,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만보를 채운 산책 뒤의 피로가 몸을 눌러왔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멈춘 그 자리에, 또 다른 두 사람이 다섯 병의 술을 나누며 삶을 기념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 간다.
내가 잠시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멈추면 세상이 멈출까 걱정 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며 잠시 멈출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내일은 치료전 마지막으로 받아야 할 혈액검사를 포함해 몇 가지 검사를 위해 다시 삼성서울병원에 간다. 여느 때처럼, 내 곁에는 딸이 함께할 예정이다.
그 아이의 조용한 동행에 나는 늘 마음이 일렁인다. 고맙고, 또 미안하고.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있다. 그 모든 마음의 결이 ‘고맙다’는 말로 수렴되는 날이 오겠지.
그땐 지금의 이 복잡하고도 서툰 감정들을 하나하나 곱게 다듬어, 감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딸에게 건네고 싶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언젠가, 아주 자연스러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