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3.오늘의 피로는 내게,
나름의 의미로 다가왔다

by 마부자

말의 흐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창밖은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 눈을 뜨지 않아도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지만 해는 뜨겁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명상으로 아침을 열었다. 그리고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고, 곧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내는 버스정류장으로, 나는 동대구역으로. 플랫폼 벤치에 앉아 수서행 SRT를 기다렸다. 월요일 이른 아침임에도 기차역은 꽤 붐볐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가는구나.’ 그 사실이 새삼 다시 놀랐고, 또 어쩐지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책을 펼쳤다. <햄릿>이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 익숙한 이름으로 내 곁에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읽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이었다. 마치 내가 그동안 얼마나 스치듯 많은 것을 이해에 머물렀는지 깨닫게 되었다.


마치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처럼, 삶의 많은 장면들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지나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수서역에 도착하고 딸은 30분 뒤 도착했다. 병원 진료는 오후 3시 20분. 그보다 일찍 올라온 이유는, 딸과 함께 알아본 요양병원을 직접 방문해보기 위해서였다.


요양병원 측에서 수서역까지 차량 픽업을 해주기로 했다. 삼성병원에서 15분쯤 거리. 조용한 산과 공원이 인접해 있는 병원이었다. 시설은 깔끔했고,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실장이라는 분과 상담을 했다. 항암 치료와 면역력 관리, 식단, 운동시설, 병동 구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내내 낯설고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는 내 삶의 어디쯤에선가 늘 ‘타인의 이야기’였고, ‘나중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앉아 병실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병실은 1인실이 세 가지, 4인실이 한 가지. 지금은 빈 병실이 없지만, 다음 주부터는 자리가 난다고 했다. 오늘 중으로 병실을 결정해달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머리로는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하루에 얼마면 6주면 얼마지, 비용차이가 큰데 작은 방, 불편한 방에서 지낼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아픈 데 방까지 불편하면 더 서럽지 않을까? 아픔의 치유와 함께 밀려오는 현실 즉, 돈을 아껴야 한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너무 단순한 결정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병과 싸우기 위한 첫 번째 공간을 선택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 앞에서 머리와 가슴이 다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실장의 말이 상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술조차 지금의 나에게는 다정한 조언처럼 느껴졌다. 아픈 사람에게조차 선택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 앞에서, 마음은 묵직해졌다.


삼성병원에 도착하자 늘 그렇듯 아픈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을 뽑고, 이리저리 층을 오르내리며 키오스크 앞에 섰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 시간. 그 사이 딸과 함께 병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아직 내겐 증상이 없기에 우리는 가끔 웃기도 하고, 사소한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눈 앞에서 호명되는 사람들의 모습, 아픈 사람들이 걸어나가는 모습들. 그 풍경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오후 4시, 혈액종양학과 교수와의 면담은 고작 5분이면 끝났다. 이미 이비인후과, 방사선학과에서 들었던 말을 반복했다.


진료를 마치고 간호사가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또 20분을 더 대기했다. 그리고 6월 30일 모의치료 일정이 잡혔다는 말만 들었다. 그렇게 하루의 진료는 끝이 났다.


진짜 진료 시간은 15분. 병원에서 머문 시간은 네 시간. 왕복 이동을 위한 다섯 시간.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기다리고, 다시 또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혼자 병원을 오가며 이 기다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득해졌다. 이 기다림 또한 치료의 일부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병의 고통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고통, 현실의 피로함까지 모두 감내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치료였다.


진료를 마치고 수서역으로 돌아왔지만, 가장 빠른 기차는 두 시간 뒤였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다림이 추가된 순간이었다.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야해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딸과 도넛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대구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섰으니 거의 12시간이 걸린 셈이다. 시간을 아꼈다고 말할 수 없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살펴본 것들이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고 기다린 아내와 딸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에어컨 바람과 태양 빛을 번갈아 맞으며 지친 하루였다.


병원 1층과 2층을 오가며 쌓인 피로는 온몸에 남아 있었다. 약국에 들러 쌍화탕과 피로회복제를 샀다. 고생한 딸에게 당장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마음이었다.


“이거라도 마셔.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았다.” 내 진심은 그런 말 속에 담겼다.


딸은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고,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눈물보다 결심이 먼저 찾아왔다.


반드시 이겨내야겠다고. 견뎌야겠다고. 오늘이라는 하루가 딸에게 슬픔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잘 견뎌냈던 순간으로 남도록.


나에게 주어진 가장 따뜻한 빚을 갚는 방법은 이겨내는 것이다. 그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다시 딸 곁에 서는 것.


그래서 오늘의 피로는 내게, 나름의 의미로 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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