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1일, 항암 0회, 방사선 0회
초여름 열대야의 더운 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들이치던 밤. 그 불청객 같은 더위와 머릿속을 어지럽힌 약간의 긴장감은 결국 나를 잠에서 밀어냈다. 아침은 그렇게 설익은 피로와 함께 시작됐다.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향했다. 후츄의 물그릇을 갈아주고 사료를 채우고 정수된 물 한 잔으로 밤새 말라 있던 속을 적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빌딩 숲 사이, 그 틈새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잠깐 명상을 했다. 당분간 이 창 너머의 하늘을 매일 볼 수 없을 것이다. 눈으로 깊게 담아두었다.
당분간 이자리에서 서서 보지 못할 하늘과 아파트 빌딩 숲사이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준비를 했다.
막내가 먼저 등교를 했다. 현관 앞에서 가볍게 포옹을 나누며 인사를 했다. 아들은 “치료 잘 받고 와요”라며 나를 응원했고, 나는 “걱정 마”라는 말을 습관처럼 전했다.
아내와 함께 동대구역으로 출발을 했고 딸도 도착을 했다. 셋이 같은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각기 다른 호차에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빨라지고 좌석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였다. 간밤에 피곤함 때문인지 감은 눈과 함께 고개를 뒤뚱 뒤뚱하며 간밤에 이루지 못한 잠을 보태었다.
수서역에서 요양병원으로 이동을 하고 원장과 진료상담을 하고 병실을 배정받아 짐을 정리했다. 앞으로 약 두 달간 나의 치료를 위한 치유의 공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지난주 주치의와 상담하여 최종적으로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서 약한 항암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주어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했다.
접수를 하고 조영제를 맞고 대기 후,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CT 촬영과 얼굴 고정 틀 제작이 이어졌다. 방사선이 정확하게 쏠 수 있도록 내 얼굴에 꼭 맞게 만드는 그 틀.
고정된 자세로 입에는 개구기 같은 보정 도구를 물고, 눈을 감은 채 기계 안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나는 확실히 실감했다.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내가, 암이라는 단어와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을. 짧은 15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질 즈음, 끝났다는 말을 듣고 나와 다시 대기를 했다.
종이를 받아 들고 항암상담을 받으러 지하로 이동을 했다. 7월 2일 오후 4시 첫 항암주사를 맞고 바로 방사선 치료를 하는 일정이 확정 되었다.
항암상담실에서는 항암전에 준비해야 할 사항들과 부작용 그리고 일정들을 알려주었다. 암 환자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영양상담을 예약하고 종이를 들고 수납을 하고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진료는 짧고 대기는 길었다. 하나의 진료가 마쳐질 때마다 하나의 서류가 계속해서 내 손에 쥐어졌고, 그만큼 설명도 많았다.
딸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매번 전해들은 향후 일정을 다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많은 주의 사항들이 전해졌다.
그런 딸은 오늘 수서역에서 내려 다시 대구로 향했다. 아쉽지만 딸도 직장인이다. 그동안 해준 수고만으로도 딸은 이미 자기 역할을 다했다.
삼성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는 일은 요양병원에서 운영하는 차량 운전기사님의 배려 깊은 안내 덕분에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큰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병실에 돌아와 남은 짐을 정리하고 병원실장과 최종 병실과 병원비등을 논의하였다. 치료전과 후 그리고 향후 면역을 위한 관리와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명을 했다.
길게 설명을 듣고 여기저기 서명을 했지만 결론적으로 최상의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두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문득 마음속에 두 가지 단어만 또렷하게 남았다. 이 병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환자의 강력한 의지와 경제적 능력 그 두 가지였다.
병실, 주사, 수액, 영양제 모든 것이 비용이고 그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었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튀어나오는 그 말. “돈 없는 사람은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이 오늘따라 서글프도록 정확하게 다가왔다.
저녁 식사 전,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병실에 들어왔다. 항암 치료 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주사였다. 엉덩이 주사에는 익숙했지만, 생애 처음으로 복부에 주사를 맞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내 위치를 자각했다.
그래, 나는 이제 명백히 환자다.
앞으로의 매일이 그렇게 나를 환자로서 인식시켜줄 것이다. 그 현실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병원에서 준비해 준 첫 식사는 아내와 나란히 병실에서 먹었다. 아직 치료 전이라 식사에는 불편함이 없었고 영양을 세심히 고려한 병원의 식단은 만족스러웠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던 아내가 피곤을 전했다. 병원이라는 환경이 아직 낯선 아내는 오늘 하루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장거리 이동, 병원 안에서 지하 1층과 4층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기다리고 또 이동해야 했던 그 긴 시간은, 그녀에게 피로라는 무게로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내게 조금은 익숙해진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아내는 오늘 처음으로 이 모든 것을 겪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그녀의 몸엔 더욱 힘겨운 하루였을 것이다.
아내가 잠이 든 후, 조용하고 낯선 병실 한구석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천천히 글로 정리했다. 글을 쓰며 나는 오늘 하루를, 내 몸에 새겨진 환자의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병실의 공기, 낯선 침대의 촉감, 몸속으로 들어온 약물의 기운까지 모두가 나에게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앞으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요한 밤, 병실의 불빛 아래에서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아주 작은 다짐을 동시에 가져본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낯설지만, 결국 나를 지켜낼 사람도, 이겨낼 사람도 나라는 걸 안다. 나는 여전히 이 삶을 사랑하고, 내 곁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소중히 여긴다.
그러니 견뎌보려 한다. 매일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내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
그렇게, 나의 치유를 위한 두 달 중 첫날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