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4일차, 항암 1회, 방사선 2회
오후 내내 병원에서의 기다림, 장시간 주사를 맞고 기다리던? 방사선 치료를 받은 뒤 돌아온 병실에서 피곤한 몸을 뉘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몇 해 전 불면증에 시달렸던 때처럼, 잠을 청할수록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속에 도렸해지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감정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냈다.
결국 한숨도 잠을 못 이룬 새벽, 병실 앞 산자락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까치의 울음소리와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아침 7시 45분 치료가 예약되어 있다. 어제 대구로 가지 못한 아내와 둘째도 치료에 동행을 한 뒤 그곳에서 바로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옆에서 고단한 몸을 뉘어 코를 골고 있는 두 사람을 깨우는 것은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을 깨워야 하는 용기를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기차를 확인을 해보니 수서에서 동대구까지 가는 아침 열차는 이미 모두 매진이었다. 평일에서 지방으로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조금의 안일함이 만든 착오였다.
곤히 자고 있는 두사람은 깨우지 않고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대기중이던 요양병원의 운행차량을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앞으로 약 두 달간 병원으로 안내해 줄 기사님의 조언 덕분에 방사선 치료시간이 언제 편한 지 서류를 일찍 제출하는 법 등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되어 불편함을 덜 수 있었다.
오늘은 병원에 가면서 개인적인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잠깐의 대화의 끝에는 나를 생각보다 깊은 사유로 안내했다.
이 병원에는 무려 7곳의 대형병원에 나누어 입원한 환자들이 있고 그들을 위한 운행차량은 3대. 기사님 다섯 분이 주야간을 나눠 근무한다는 사실.
매일 환자들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는 일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님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단 10분 차이에도 누군가는 서두르고, 또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신의 시간만을 고집하다 보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다. 때로는 모욕적인 말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켠이 묵직해졌다. 여기에서 다 쓰기엔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아픈 사람도 사람이고 돌보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이 얼마나 자주 무시되는지를 생각했다.
곧이어 병원에 도착을 했다. 차에서 내리며 운행기사님께 조심스레 말했다.
“아픈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보다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으니 마음 상해하지 마시고 안전운전 하세요.”
정말, 그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것조차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전 7시 30분에 선 병원 내부의 모습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 그리고 어깨를 치이게 만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병원 복도.
그러나 오늘은 우울한 표정과 휠체어나 침대에 누운 환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밝은 표정으로 출근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더 눈에 먼저 들어왔다.
가슴에 병원의 명찰이 흔들리고 손에는 저마다 커피와 텀블러들을 들고 서로 이야기하며 출근을 하는 여느 회사의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불과 얼마전까지 저들처럼 출근을 하며 직장 동료와 커피한잔을 마시고 아침을 시작했던 내가 오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은 이공간이 내겐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방사선 치료실에 도착하니 대기 없이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한달 동안 병원을 다니며 대기 없이 치료를 받는 첫 순간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희열이 밀려왔을 정도였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위한 고정 틀을 쓰고 약 10분정도 치료를 끝내고 차량으로 병실로 돌아왔다.
아내와 둘째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 기차 예매를 다시 시도해서 오전 10시 30분에 두자리를 간신히 확보할 수 있었다.
서둘러 준비하고 병원 앞까지 배웅했다. 고생했다고 말하고 포옹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줘. 내가 완치된 모습으로 집에 돌아갈 테니 너희는 그저 무탈하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아내에게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챙겨먹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고 다시 하고 말았다.
아내는 “더 아픈 사람이 누굴 걱정하고 있어. 잘 지낼 테니 몸이나 잘 챙겨” 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두사람을 보내고 병실로 돌아오니 어제 한숨도 못잔 피곤함이 밀려왔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했더니 간호사가 약품 가득한 카트를 밀고 모습을 나타냈다.
간호사는 주렁주렁 링거를 매달고 팔에 주사바늘을 꼽으며 말했다.
“저희가 가끔 와 보긴 할 텐데 혹시 그전에라도 약이 다 들어가면 벨을 눌러주세요. 그럼 다른 약으로 교체 해드릴게요”
링거를 꽂고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통증이 생겨 눈을 떠보니 링거액이 떨어져 혈액이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다.
간호사를 호출해서 다른 링거로 교체를 했다. 예정 소요시간을 물어 알람을 맞추고 눈을 붙였다. 그러나 한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결국 책을 펼쳐 들었다.
병원 첫날부터 읽기 시작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오늘에서야 완독했다. 그동안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비극과는 달리 이 책은 희극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악을 유쾌하게 응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통쾌했고 어디선가 잊고 있었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이른 저녁. 아내 없는 병실은 조용했다.
낯설지만 덤덤한 이 고요 속에서 나는 요즘 나의 하루 루틴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셀레나자라는 이름의 가글액으로 입안을 헹구고 삼키는 것이다. 짠 바닷물을 들이킨 듯한 느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아직 공복이라 그런지 이 짠맛이 뱃속까지 퍼지는 듯하다.
그렇게 입안 정리를 마치고 나면 하루 세 번 준비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양치를 한다. 입안은 생각보다 빠르게 상처가 생기고 또 쉽게 곪기 때문에 시간 맞춰 씻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후 첫 번째 탄튬가글 입안에 넣는 순간, 청량함보다는 따끔함이 먼저 느껴진다. 마치 입 안에 작은 마취를 하는 기분이다. 톡 쏘는 느낌을 30초쯤 참고 있다 뱉고 나면 어느새 입 전체가 얼얼하다.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이번에 추가로 받은 약 디클로메드로 다시 가글을 한다. 복숭아 향이라고는 하지만 그 단맛 너머로 씁쓸함이 먼저 다가온다. 효과를 생각하며 조용히 참는다.
그 후 또 1시간쯤 지나면 이번엔 뿌리는 방식의 가글약으로 입 안 곳곳에 분사해 헹구고 다시 조심스레 삼킨다. 하루 세 번 반복되는 이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하루가 반쯤 지난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네블라이저가 추가된다. 호흡기를 청소하고 폐를 보호하기 위해 처방받은 것이라 한다. 약을 기기로 흡입하며 하루 세 번 15분씩 시간을 들일 예정이다.
생각보다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병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루틴이다.
이제는 약을 먹고 가글을 하고 숨을 쉬는 것까지도 모두 정해진 절차대로 해야 한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니 내가 대신해 규칙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루틴.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규칙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루하루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 결국 나를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