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2,첫 항암!
오늘 나는 그 첫 발을 내디뎠다.

by 마부자

입원 3일차, 항암 1회, 방사선 1회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도 서울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언제 더웠냐는 듯이 밤사이 비가 내렸고 구름이 낮게 깔린 이른 새벽 공기는 낯설게 차가웠다.


진단을 받고부터 단 하루도 긴장 없이 보낸 날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암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그날 이후 가장 깊은 긴장감 속에서 밤을 보냈다.


병이 내 몸 안에 있다는 사실도 버거웠지만 아무런 조치 없이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했던 그 나날들이 더 나를 괴롭혔다. 그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치료를 시작하는 오늘, 그 낯선 병원의 창밖 산등성이 위로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오후 3시 이비인후과 진료, 4시 항암 주사, 8시 방사선 치료로 일정은 빽빽하게 짜여 있었고 병원에 도착하니 둘째가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항에서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올라온 길이었다. 병원 건물 안에서 서로를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아들은 정확히 이비인후과 앞에 서 있었다.


길치인 내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금방 찾았나봐?” 하고 묻자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아빠 오늘 일정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해줘서 다 외웠어요.”


못내 걱정했던 두 남매는 그런 식으로 드러나지 않게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평소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보았던 부모로서 나는 순간 조금 부끄러워졌다.


딸의 빈자리는 아들이 채워주었고 그렇게 다시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조직검사 결과에 반응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함께 들은 첫 안도의 말이었다.


곧이어 항암주사를 위해 또 한 시간의 대기가 이어졌고 드디어 주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항암치료실이 단독 침대 공간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넓은 공간에 안마의자처럼 생긴 의자가 줄지어 있었고 약 10명의 환자들이 각자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 옆엔 보호자들이 1인씩 앉아 있었고 오늘은 간호사의 배려로 아내와 아들이 둘 다 함께 있어 주었다.


먼저 희석제를 10분간 주입하고 수액을 1시간. 그리고 항암제를 1시간, 다시 수액을 1시간의 주사 그렇게 총 3시간 40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편한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보호자들이 앉은 그 딱딱한 의자가 더 마음에 걸렸다. 치료는 환자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의 고요한 헌신도 이 싸움의 일부였다.


아침에 책을 챙길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왔던 것을 조금 후회했다. 긴 시간을 하와이대저택 영상과 예전에 내가 썼던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버텼다.


중간에 아내와 아들은 저녁식사를 다녀왔고, 오후 7시 20분, 첫 항암주사가 완료되었다.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 첫 항암에 어지러움, 구토, 심한 탈진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를 잘해서 인지, 다행히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컨디션으로 치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방사선 치료실로 이동했다.


한 시간 정도 대기 후 침대에 누웠고, 며칠 전 제작한 고정틀을 상반신에 씌운 채 모의치료와 똑같은 방식으로 첫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말은 치료지만 결국은 내 몸을 방사선에 노출시키는 일이었다. 약 10분 만에 치료는 끝났다. 몸을 일으킬 때 약간 어질함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내일부터는 주 5회 치료가 시작된다. 요양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보통 처음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대기 환자가 많아 늦은 밤, 보통 오후 11시쯤 치료를 받게 된다고 했다.


특히 오전시간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원하기 때문에 자리기 나기 어렵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오후 늦게 받다가 향후 시간을 조금씩 앞당겨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가능한 한 아침 일찍 받고 싶었다. 하루 종일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일은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치료 시간을 조금 당길 수 있을까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확실한 시간은 오전 7시 40분하고 오후 10시가 있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고 말했다. “7시 40분으로 해주세요.”


너무 이르지 않겠냐며 간호사는 망설였지만 그 시간은 내게 오히려 최적이었다. 평소 명상을 끝내면 대략 7시 즈음이고 산책하듯 바람을 쐬며 방사선 한 번 맞고 오는 하루의 일정은 그리 나쁘지 않은 하루의 루틴이었다.


일정을 마친 후 아내와 둘째와 함께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원래 오늘 대구로 내려가려던 아들은 하루 더 머물며 내일 첫 아침 치료까지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은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시작한 날이다. 지난 40일간의 막막하고 두려운 시간들이 끝나고 암이라는 이름의 녀석과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29번의 작은 전투와 5번의 큰 전투가 남아 있다. 준비는 마쳤고 나는 기꺼이 이 싸움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 있었다.


보통 항암 10회쯤 지나야 몸에 큰 변화가 온다고 한다. 암세포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맞서야 할 것이다.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방어하면서 그렇게 하루씩 작게 이겨내고 싶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완치라는 단어를 받아 안고 싶다.


오늘, 나는 그 첫 발을 내디뎠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단단한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