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4.까치 울음소리 하나가
마음을 여는 시작

by 마부자

입원 5일차, 항암 1회, 방사선 3회


전날 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치료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 때문이었는지 밤새 뒤척였던 피곤이 어느 정도 가셨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눈을 떴을 때는 조금 덜 힘든 아침이었다.


출근길 교통 체증을 피하려면 이른 시간에 병실을 나서야 한다는 기사님의 말에 평소보다 서둘러 준비했다.


그런데 나는 약속한 시간보다 더 일찍 병실을 나왔다.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그저 걷고 싶었다. 병원 앞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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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생각보다 잘 다듬어져 있었다. 모두가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는 아침,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까치 한 마리가 눈앞으로 날아올랐다. 그 까치가 언젠가부터 나에게는 일종의 징조 같은 것이었다.


멀리서 까치 소리를 들으면 괜히 오늘 하루가 잘 풀릴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도 때로는 내가 스스로에게 쥐여주는 작은 희망이 된다.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했고 치료를 마친 뒤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베니스의 상인>서평을 마저 썼다. 처음엔 희극이라고만 생각했던 작품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부조리와 편견, 권력과 차별. 그런 것들이 이야기의 배경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래서 더 이상 고전이 아니라 지금의 내 삶과 마음을 흔드는 현재형의 스승 같았다.


아직 책상에는 두 권의 비극이 남아 있다.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게 될까.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기대된다.


오후엔 오래된 친구로부터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마음 맞는 동창들과 만든 작은 모임, 그 안에서 유독 말이 잘 통했던 한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늘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았다. 특히 친구 부모님의 장례엔 발인까지 함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당연함을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친구들은 내가 아픈 걸 모른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해 내 상황을 전하고 대신 내 마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목소리는 울먹였다.

“우리 나이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제 진짜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별 소식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불참의 변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나의 싸움을 먼저 견뎌야 한다.


오후엔 며칠 전 신청한 네불라이저가 도착했다. 약품을 기계에 넣고 코와 입으로 증기를 들이마셨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마치 중환자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보호되어야 하는 누군가처럼. 하지만 나는 아직 아프지 않다. 다만 아프지 않기 위해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이렇게 작은 노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오늘부터 루틴 하나가 더 늘었다. 하나씩 늘어가는 이 일상들이 귀찮기보다 오히려 내게는 살아가려는 의지의 증거다. 지금의 내 삶은 그런 사소한 습관과 믿음 위에서 조금씩 조금씩 버텨지고 있다.


까치를 아침에 보았을 때는 오늘 하루가 순조로울 거라는 단순한 징조로 여겼다. 늘 그래왔듯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지나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의 어머님 부고 소식은 겉으로 보기엔 불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나는 오랜 시간 숨겨왔던 내 상황을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부고라는 슬픔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괜찮은 척만 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마주한 까치는 단순히 좋은 일을 알려주는 전령이 아니었다.


그건 지금이 말해도 괜찮다는 이제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조용한 신호였던지도 모른다.


이따금 희망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까치의 울음소리 하나가 마음을 여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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