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6일차, 항암 1회, 방사선 3회
오늘은 병원에 머문 이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였다. 치료도 없었고 링거도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되던 방사선 치료도 팔에 얹혀지는 수액병도 없었기에 하루가 처음엔 어색하게 다가왔다.
몸을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과 더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지도 않았고 무겁게 흐르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기분 좋았지만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약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상반된 감정들이 서로 엇갈리며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낯선 조용함 속에서 나는 내 몸의 컨디션과 마음의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낯설음이 나를 압도하지 않았다. 이곳은 단지 내가 머무는 곳이자 내가 쉬는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후에는 오랜 친구들이 찾아왔다. 인천에서 온 두 명의 친구는 일명 00 친구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우리는 병원 근처 식당에서 조심스럽게 점심을 먹었고 이어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느 때처럼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들도 이 병이 지닌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웃어주었고 더 깊이 들어주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과 혼자 두지 않겠다는 그들의 마음이 조용히 나와 친구들의 공감이 되어 서로에게 전달되었다.
병실로 돌아와서는 오랜만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오늘 내가 읽은 책은 하인리히 뵐의 카다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였다.
그 속 문장들을 따라가며 왜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자신의 성장기에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추천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부당한 시선과 왜곡된 언어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그리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순간 지금의 내 상황과 겹쳐지는 감정을 느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와 그것을 견디며 더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늘은 고요했고 다정했고 깊었다.
그 모든 감정들이 내일의 나를 조용히 지탱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이 다행스럽다고 나는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