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6.기다림이란 말이 한때 내게
좋은 감정이었다.

by 마부자


입원 7일차, 항암 1회, 방사선 3회


특별한 일정이 없는 일요일 아침. 내 정신은 꼭 지켜야 할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듯 여느 날처럼 정해진 시간에 몸을 깨웠다.


암막 커튼을 젖히자 푸른 산이 시야를 가득 채웠고 피톤치드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어제도 반겼던 까치가 오늘도 여전히 요란한 울음으로 나를 반겼다.


시간은 오전 6시. 아침 식사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간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병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산책로 입구의 이정표를 보니 이 길은 남한산성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5.8km. 시간으로는 1시간 30분.


물론 그건 매일 걷는 이들 혹은 지치지 않는 건강한 사람들의 기준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도심 안의 작은 산쯤으로 생각했는데 조금만 걸어 들어가자 나무들이 생각보다 울창했다. 이름 모를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스산한 소리를 내며 나를 맞았다.


병실에서 바라보던 높지 않던 산이 막상 걸어보니 꽤 가파르게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언덕쯤에서 멈추는 건 나약한 일이라며 이를 악물고 올랐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간의 벤치에 앉아 숲속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얼마나 걸었을까. 중간 즈음에서 반가운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산이라면 꼭 있어야 할 팔각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블로그 이웃인 “별꽃”님을 알게 된 이후 팔각정을 보면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게 숙제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팔각정. 망설임 없이 바닥에 누워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대구 연꽃습지에서 보았던 팔각정과는 또 다른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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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담긴 그 문양보다도 그 안에서 조용히 나를 마주한 시간이 따뜻했다. 작은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의도하지 않은 산책길에서의 조용한 만남.


이런 순간들이 바로 행복의 씨앗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은 짧은 코스를 선택하기로 하고 샛길로 내려왔다. 병원 맞은편의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들로 꾸며진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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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식당과 커피숍. 나머지는 시민 프로그램 공간처럼 보였다. 운영하지 않은 지 꽤 된 듯 조용했고 그 철제의 사각형들이 아침의 더위와는 다르게 묘하게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뒷골목 같은 오래된 거리의 공기 같기도 했다.


건물 앞 작은 공원으로 발을 옮겼다. 화단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있었다. 벤치에 앉아 이른 새벽 반려견과 함께 나온 이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종종걸음으로 혹은 성큼성큼 걷는 강아지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병실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구내염을 막기 위한 루틴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마무리했다. 책상 앞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예전 일요일의 나는 요리사였다. 온종일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며 가족들을 위해 움직였다.


그 시간이 귀찮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사치스러울 정도의 행복이었는지 알겠다.


지금은 그 일상이 사라진 일요일이라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앞으로 7번의 일요일이 지나면 다시 그 주방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괜스레 마음이 가볍다.


내일 아침 7시 40분부터 일주일간 쉼 없는 치료가 시작된다. 항암제 1회, 방사선 5회. 이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치료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라고 했다.


현재까지 내가 느낀 변화는 어지러움. 병실 안에만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 아침에 산책을 나갔지만, 바람을 맞고 나무 사이를 걸었는데도 머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항암 치료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 어지러움, 구토, 그리고 무기력이라고 한다. 아직은 밥맛이 없거나 잠을 못 이룰 정도는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어지러움은 분명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다른 환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방사선 치료는 열 번 정도 진행된 후부터 본격적인 몸의 반응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번 주가 끝나면 나는 여덟 번째 치료를 마치게 된다.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 몸이 반응하기 시작할 시간, 그리고 감당해야 할 어떤 고비들. 기다림이란 말이 한때는 나에게 좋은 감정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어떤 순간을 기대하는 것. 하지만 지난 5월 이후 기다림이란 단어는 이제 불안과 두려움에 더 가까운 감정이 되었다.


삼성병원의사도 요양병원의사도 말했다. 조만간 분명 증상이 나타날 거라고. 그 말은 내가 감당해야 할 그때가 있다는 것이고 나는 지금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더 큰 통증이 없기 때문인지 자각증상이 거의 없는 지금, 치료를 계속할수록 더 아파질 거라는 의사들의 말은 오히려 내게 더 막막하고 이해되지 않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데 곧 무너질 거라는 예고의 말들로 인해 상상 속의 고통이 현실보다 더 크다는 걸 이 시기를 지나며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의 시간들이 유독 낯설다. 차라리 빨리 아프고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부디 아픔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매 순간 교차한다.


그렇게 내 감정은 흔들리고 또 멈춘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버틸만 하니까. 지금은 긴 호흡을 하는 시간.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을 잘 견디는 것이 나의 몫이라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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