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그 웃음에 힘이 나를
나아가게 만들었다.

by 마부자

입원 8일차, 항암 1회, 방사선 4회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초가을처럼 선선하게 병실로 스며들었다. 준비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 또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을 서두르는 차들로 도로는 이미 빽빽하게 메워져 있었다.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신호마다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를 지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도와 밀도를 실감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인천 본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가끔 서울로 출근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서울은 바빴고 지금도 그렇다.


단지 내가 그 바쁨에서 비켜나 있었을 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 일상 속을 살아가고 있었다.


치료실에 도착하면 언제나 느끼는 건 치료사들의 밝고 친절한 태도다. 그들이 의사인지 치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가 내 긴장을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 거대한 방사선 장비 앞에 서면 여전히 몸이 움츠러들지만 이내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에 안도하게 된다.


“잘하고 계세요”

“그대로 계시면 돼요”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가 다 할 테니 힘주지 마세요”

“정말 잘하셨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교육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단지 매뉴얼이 아닌 배려와 따뜻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환자를 향한 존중이 습관처럼 새겨진 사람들이라는 걸 오늘 또 느꼈다.


치료를 마치고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와의 진료가 예정되어 있어 1시간 남짓 여유가 생겼다. 1층으로 내려가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다.


출근 시간 이후의 병원은 다시 익숙한 풍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 찬 공간. 삶이 병을 안고서도 계속 이어지는 현장이었다.


의자에 앉아 어제 영상으로 보던 <왓츠 유어 드림>의 뒷부분을 시청했다. 끈기와 전념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희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기 위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들이었다.


의사와의 짧은 진료. 컨디션을 먼저 물었다. 어지러움 외엔 괜찮다고 하자 젊어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대부분 첫 항암 후 많이 힘들어하는데 나는 잘 견디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목젖 옆의 종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치료 반응이 좋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의사는 몇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살이 빠지지 않도록 식사를 잘할 것

피부 보습을 철저히 할 것

식사 후 구강관리를 철저히 할 것


세 가지 모두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다시 웃으며 ‘걱정 마시고 치료 잘 받으시고 다음 주에 뵐게요’ 라고 말했다. 그 웃음의 힘이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것 같았다.


병실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나의 루틴을 차근차근 이어갔다. 세 번의 식사. 세 번의 구강 가글과 치료. 세 번의 네불라이저 치료. 그리고 두 번의 주사. 그렇게 명확하게 짜인 하루는 어느새 오후로 넘어간다.


오후에는 책 한 권을 완독했다. 이근후 작가의 책이었다. 병실 침대에 앉아 천천히 넘기기에 딱 좋은 책. 90세의 작가는 정년을 훌쩍 넘긴 후에도 여전히 책을 쓰고 있었다.


긴 시간 한 자리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 그의 글은 조용한 언어로 나를 다독였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고 나서 문득 내 안에 피어오르는 생각들.


책의 제목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은 대충 살아도 된다는 허무의 말이 아니었다.

내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인생이란 지나온 길을 말한다.


그러니 기대할 것 없는 인생이란 누군가에게 기대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무언가라는 뜻이었다.


오늘 의사의 말과 작가의 문장 속에서 난 그 믿음을 다시 떠올렸다. 희망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매일 꾸려가는 선택 반복되는 하루의 루틴 속에서 아주 조금씩 자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