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8.병이 부끄럽게 여겨져
나를 감추려 했던걸까.

by 마부자

어느덧 낯설었던 병실 풍경은 내게 익숙한 배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생소하게만 들렸던 새소리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침을 여는 소리처럼 스며들었다.


목 안의 따끔거림과 마르듯한 갈증 탓에 몇 번 잠에서 깨었지만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든 덕인지 몸은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 아침이었다. 조용히 준비를 마친 뒤 차량에 올랐다.


오늘은 동승자가 있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경남 의령에서 온 부부였고, 남편분이 폐암 3기라고 했다. 항암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 받고 있으며 항암이 끝나면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들과는 으레 가장 먼저 이렇게 묻는다.

“어디에요?” (처음엔 내가 어디 사는지를 묻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암이 생긴 위치를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몇 기예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누군지보다 어디가 아픈지가, 그리고 이름보다 병기가 더 중요해지는 세계였다.


어느 부위에 암이 자리 잡았는지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가 이곳에서는 곧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누구도 개인적인 다른 일상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이 병실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직업도 지위도 성공도, 모두 병원 문을 들어서기 전 어딘가에 두고 온 이름표처럼 느껴진다.


내 병기를 들은 아내분은 오히려 내가 다행이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사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그분들인데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됐다.


그래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내 마음은 미안함보다도...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그 이유는 그 두 사람이 나눈 눈빛과 말투 때문이었다.


그들이 안고 있는 병이 어떤 깊이든 간에 그들 안에는 환한 웃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웃음은 내가 상상했던 고통의 표정과는 달랐다.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사실 나 스스로는 병원 안에서 다른 환자들과 굳이 가까워지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 지금 이 병이라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무거워서 다른 이의 무게까지 나눌 자신이 아직은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병을 누군가에게 꺼내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의 병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마음이 조심스러워 회피하고 싶었다.


이런 내 태도는 어쩌면 병을 얻기 전 이미 내가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던 방식의 연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외로움을 감내하는 데 익숙했고 그런 고립을 스스로 선택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따가 봐요’라고 밝은 인사를 하며 먼저 병원에서 내리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지금 내가 타인의 병마저 멀리하고 있는 이 마음은 혹시 그저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을까.


내 병이 부끄럽게 여겨져 나를 감추려 했던 건 아닐까. 마치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건 조금 내게 슬픈 착각처럼 느껴졌다.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의 외로움은 내가 선택한 고요함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외로움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해 만들어진 또 다른 울타리 같다.


그 둘의 차이를 나는 오늘에서야 겨우 알아차렸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짧은 치료를 마치고 익숙한 병실에 다시 들어섰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이틀에 한 번 맞는 링거를 팔에 꽂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내 몸속으로 무언가 흘러들어왔다. 어떤 약인지 어떤 이유로 주입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액체들이 내 몸을 살리고 있다는 것을 문득 실감했다.


마치 무거운 액체를 담은 주사액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생명수처럼 말이다. 링거가 끝나고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주사 바늘을 빼려 할 때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부터는 병실에서 배식 받지 않고 식당에서 다른 분들과 같이 먹으려고요.”


간호사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 하셨어요. 참고로 식당에 가서 드시면 더 맛있는 음식을 드실 수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누군가와 어깨를 맞대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 여유는 아직 내 안에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회피하지는 않겠다고 나를 고립시키는 태도에서 한 발짝은 벗어나보자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어쩌면 이 병과 나 사이에 새로운 경계를 긋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병을 앓는 나로서의 삶이 아니라 병을 지나가고 있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이전 07화07.07.그 웃음에 힘이 나를 나아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