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1.낯선 병실에서의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다.

by 마부자

입원 2일차, 항암 0회차, 방사선 0회차.


오랜만에 낯선 공간에서 눈을 떴다. 이른 아침, 평소 같으면 들렸을 실외기 위에서 울던 새소리도, 쓰레기를 수거하러 온 차량의 철커덕거림도, 옆집 강아지의 짖음도 모두 사라진 고요한 아침이었다.


대신, 병실 창밖으로 스며든 것은 7월의 첫날을 알리는 잿빛 하늘과 조용히 내리는 빗방울이었다. 낯선 공간에서의 하루는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짧은 명상을 마치고 내게 주어진 아주 작은 책상 앞에 앉았다.

KakaoTalk_20250701_151043435.jpg?type=w1
KakaoTalk_20250701_151043435_02.jpg?type=w1

입원 첫날, 익숙한 컴퓨터와 모니터를 연결하며 앞으로 두 달간 이곳이 나만의 공간이 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익숙하지 않은 침대와 낯선 벽지 사이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하나만 있다면 나는 나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의지를 다지며 책상에 앉았다.


책을 펼치기 전에 한동안 멈춰 두었던 100일간의 목표 쓰기 노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자난 5월 27일부터 시작해서 70일을 채우고 멈췄던 기록이었다.


병을 진단받고 나서부터는 더는 무엇을 쓰고 싶지도 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시 쓴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번엔 전과는 다른 목표다. 건강이나 경력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고 분명히 도달해야 하는 어떤 목표가 있었다.


그 절실함이 오늘 내 손을 움직이게 했다. 흰 노트 위에 조용히 그 목표를 적어 내려갔다. 이제 더는 망설이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일기를 마무리할 즈음, 간호사가 약들이 실린 카트를 밀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카트 위엔 링거 약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모든 약품들 위에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순간 얼떨떨해서 물었다. “이거 전부 지금 다 맞는 건가요?”

간호사는 웃으며 말했다. “네, 오늘요.”


작은 링거 봉지부터 병에 든 약들까지 줄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에 눕고 주삿바늘이 팔에 꽂히고 한 방울씩 포도송이처럼 떨어지는 약들이 내 혈관을 타고 들어왔다.


지금, 내가 병원에 있는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링거줄 하나로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오후엔 서울 근교에 사는 형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그도 뇌경색으로 투병을 겪었던 터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했다. 조용한 위로와 응원이 담긴 그 시간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오후 4시까지 무려 여섯 시간 가까이 링거를 맞았다. 앞으로 방사선 치료가 병행되면 하루 일과 대부분이 이렇게 약물 치료로 채워질 거라고 했다.



조금씩 드러나는 앞으로의 내가 겪어야 할 하루들이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막연함과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들게 되었다.


치료 전 예방을 위한 주사에 벌써부터 쓸데없는 감정이 밀려드는 나를 보며 다시한번 사람이라는 감정의 동물이 얼마나 간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다시 다잡고 생각했다. 이 치료가 고통스럽다는 건 내 몸이 지금 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고.


오전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고 오후엔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면서 온 병실엔 눅눅한 습기가 감돌았다. 그 무거운 공기처럼 오늘의 시간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묵묵히 견디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에 어김없이 병실로 들어온 식판. 항암 치료를 위한 식단이라고 했다. 조미료를 쓰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예상 외로 음식은 너무나 맛있었다.


영양사와 조리사가 신경 써 준비한 균형 잡힌 삼시세끼와 살면서 처음 맞아보는 종류의 수액과 영양제, 그리고 면역 주사까지.


입과 혈관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후에 간호사가 두개의 약을 더 가져왔다. 항암 및 방사선 치료시 손상될 수 있는 정상세포들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미리 항산화 시키는 약으로 특히 방사선 치료시 입이 헐거나 구내염증을 미리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셀레나제라는 약과 국소하이드로겔이라는 약으로 하나는 하루 한번 가글후 삼키는 약이었고, 하나는 들고다니며 하루 4회정도 입에 뿌리는 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링거 줄에 매달려 있는 약봉지들을 보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몸을 지닌 내가 이렇게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걱정이란 얼마나 덧없고 또 얼마나 쉽게 바뀌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감정이 얼마나 불필요한 소모였는지를 오늘 내 뇌가 몸소 증명해 보였다.


내일은 둘째 아들이 포항에서 수서역으로 올라온다. 첫 항암치료에는 반드시 보호자가 함께 있어야 하고 치료가 저녁까지 이어질 예정이기에 아내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아들이 옆에 있어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했고 마음이 놓였다.


지난 5월 27일이었다.

편도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날 이후로 한 달하고도 닷새가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 시간들 사이에 무너졌고 다시 일어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첫 치료라는 현실 앞에 선 것이다. 앞으로 예정된 6주라는 시간도 분명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래를 앞당겨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응원과 희망의 말들을 다시 마음속에서 꺼내 되새겼다.


오늘 이 병실에서의 두 번째 밤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걱정보다는 감사로 두려움보다는 다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