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1.아마 그것이 문장의 힘이겠지.

by 마부자

입원 12일차, 항암 2회, 방사선 치료 8회.


아침 햇살은 뜨겁게 창으로 밀려들었지만 내 몸은 자꾸만 안으로 가라앉았다. 치료의 여운은 통증보다는 불안으로 남았고 조용히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이런 감각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처음엔 다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도 결국은 일상이 되었다.

병원 셔틀 안에서 처음 만나는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것도 무심한 듯 던지는 "어디에요?"라는 인사도 어느덧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셔틀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픈 사람도 많지만 암 환자도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나는 무심히 그렇게 말했는데 기사님은 조용히 사실 하나를 덧붙였다.

“지금 이 병원에만 하루 700명,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방사선 치료만 으로요.


하루 700명. 그것도 단 한 곳, 삼성서울병원에서만. 그 수치를 듣는 순간 말없이 마음이 먹먹해졌다. 감기로 병원을 찾아 한 시간씩 기다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암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에 눌러앉아 있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암은 이 나라의 특별한 병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보통의 병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비교는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은 버틸 힘을 준다.


오전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치료사 한 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별것 아닌 말이었는데 순간 괜히 울컥했다. 아무도 모르게 견뎌낸 하루하루를 누군가 알아봐준 것 같아서. 몸에 닿는 기계보다 마음에 닿는 말 한마디가 더 따뜻할 때가 있다. 말이 가진 위로의 힘을 오늘 새삼스레 느꼈다.


점심 무렵, 아는 형님 한 분이 시간을 내 병원 앞으로 찾아왔다. 퇴근하고 온 것도 큰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평범함이 오히려 더 고마웠다.


병원 근처 작은 식당에서 시원한 잔치국수 한 그릇을 함께 먹고 식사 후엔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오랜만에 한 잔 마셨다.


긴 시간 머문 것도 아닌데 마치 바깥세상을 아주 오랜만에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항암 중에 마시는 커피는 지양해야 한다고도 하지만 오늘 그 커피 한 잔은 나를 위해 허락된 작은 사치였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누군가와 웃으며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음의 온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는 듯했다.


병실로 돌아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오늘은 조금 덜 아팠고 조금 더 따뜻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병실로 돌아와 어제 완독한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첫 여름, 완주>는 한 사람의 고요한 시간을 따라 걷는 듯한 소설이었다.


크게 울지 않고도 깊게 아플 수 있다는 걸 소리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외로울 수 있다는 걸 작가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단하게 보여주었다.


그 안의 인물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고 결국엔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완주해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여름 옆에 잠시 앉아 있었다. 마치 내 마음도 그 뜨거운 계절을 건너가고 있는 사람처럼.

서평을 쓰는 동안 어지러움도 메스꺼움도 조금은 잊혔다. 아마 그것이 문장의 힘이겠지.


아픈 사람에게 약이 필요하지만 더 간절한 건 이해 받는 문장 한 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누군가의 이야기에 기대어 나의 하루를 조용히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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