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3.아이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으니까.

by 마부자

아침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러나 새벽 공기는 뜻밖에도 무거운 열기를 머금고 열린 창을 통해 천천히 병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폭염과 비가 예보된 날. 하늘은 울듯 흐리고 나는 그 속에서 밤새 건조했던 내 몸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 이틀동안 입안의 건조함은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푹 자본 게 언제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은 내게 사치가 되었지만 어제는 다행히 이른 시간 잠에 들 수 있었다.


아마도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 같았다. 입안의 염증이 시작되었고 음식은 삼킬 때마다 목을 긁고 지나간다. 쓰라리고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식사는 가능하면 자극을 피한 부드러운 것들로만 채웠다. 맛보다는 그저 넘기는 데 집중한 식사였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조용히 맞이하며, 나는 <내면 강화>라는 책을 펼쳤다. 정신과의사인 필 스터츠의 책이었다. 영화배우 조나 힐의 정신과 주치의였던 스터츠와의 상담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진 <스터츠>의 주인공이다.


조나 힐이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 필 스터츠를 카메라 앞에 앉히고 만든 다큐멘터리는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누가 누구를 인터뷰하는 건지 모호한 장면 속에서 결국 조나 힐은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아버지와의 애정 결핍, 어린 시절의 불안, 유명세 뒤의 공허함.


그는 스터츠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놓는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멍하니 듣기만 한다.


그 모든 장면이 무겁고 어두운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것은 스터츠라는 사람의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토달지 말고 내가 시키는 그대로 하라”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은 부끄럽고 미숙한 자아를 감추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우리가 인생에서 반드시 마주치는 세 가지, 즉 고통, 불확실성, 지속적인 노력이 삶의 진실이며 그것들을 피하려 할수록 인간은 괴로워진다고 말한다.


나도 책을 읽으며 몇몇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지금 이 병실에서,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이라는 말을 누구보다 또렷하게 실감하고 있는 내게 스터츠의 말은 너무도 직접적으로 박혔다.


그 책의 부제 “흔들리면서도 나아갈 당신을 위한 30가지 마음 훈련”이라는 문장은 오늘의 나에게 꼭 맞는 말처럼 다가왔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멈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그냥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하루를 산다는 것 자체가 나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걸 오늘 알았다.


오후에는 오랜만에 병원을 나섰다. 딸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서울에 약속이 생겨 올라온 길에 점심을 함께하자고 연락이 왔다.


병원 앞의 번화가를 걷는 건 처음이었다. 바람은 없었고 열기만 가득했지만 딸과 마주 앉아 먹는 식사는 오랜만에 웃음도 나왔다.


식사 후 커피숍에 들러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인근 다이소에 들려 간단한 쇼핑을 했다. 딸은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 짧은 만남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엄마를 닮아 잠이 많은 아이가 오전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복받쳤다.


나는 부모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선뜻 미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늘 다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결코 짐이 되지 말자고. 그런데도 작년엔 아내가 올해는 내가 병상에 누워 아이들에게 묵직한 현실을 안기고 말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속엔 무거운 것들이 자꾸만 쌓인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을 훈련 중이다. 스터츠가 말하던 그 그림자와 고통과 불확실함과 함께 머물며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으니까.

이 모든 흔들림을 견디며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회복이라는 이름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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