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15일차, 항암 2회, 방사선 치료 9회.
일주일 내내 비 소식이 예보된 날이었지만 아침 병실을 비추는 햇빛은 그런 기상 정보 따윈 전혀 믿지 않는 듯 따가웠다.
간밤에 내내 뒤척이며 잠을 설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받는 방사선 치료. 그러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도 반복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는 요양병원과는 또 다른 묵직한 분위기의 눈인사를 나누게 된다.
누군가의 자식이자 누군가의 부모일 그들이 이른 아침 이곳까지 오기 위해선 분명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잠시 멈췄을 것이다.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아픔과 애씀만큼은 닮은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치료 후 곧장 요양병원으로 가지 않고 병원 로비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전 9시에 예정된 의사 면담 때문이었다. 함께 나온 분을 배려해 조금 일찍 움직였더니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입안의 염증이 점점 심해져 뭔가를 먹는 일이 조심스러워졌지만 빈속은 피해야 하기에 간단히 빵이라도 먹고자 제과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줄. 줄을 서는 걸 못 견디는 성격 탓에 발길을 돌려 결국 편의점에서 밀빵 샌드위치와 두유를 샀다.
로비 한편에 자리를 잡고 유튜브로 ‘하와이 대저택’ 채널의 새 영상을 보며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유쾌했다.
면담에서는 예상대로 입안 염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의사는 염증이 지금보다 심해질 수도 있고 혹은 이 상태로 유지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통제를 처방해주며 체중이 빠지지 않게 꼭 식사를 챙기라고 당부했다. 짜서 먹는 구강보호제도 함께 처방해주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인데 내 귀엔 “더 심해질 수 있어요”라는 말만 깊게 남았다.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말들만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나 이 또한 내가 만들어낸 감정의 파편일 뿐.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 조각은 진료실에 내려두고 왔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한 통의 카톡. 유효기간이 만료된 내 체크카드가 재발급되었다는 메시지였다. 문제는 주소가 예전 직장 주소로 되어 있었다는 것.
이미 퇴사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시스템은 나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용도 안 하던 카드인데 재발급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왜 발송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주소 변경은 해야겠다 싶어 카드사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어렵사리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지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이미 우체국 등기로 접수되어 변경이 불가능하니, 내가 직접 우체국에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신청하지도 않은 카드를 보내 놓고 이 모든 번거로움을 고객이 감당해야 한다니.
상담원의 말투는 무척 차가웠고 책임을 돌리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우체국에 전화해서 또 한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허탈했다.
우체국 전산에 접수 등록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만약 접수가 되었다고 해도 카드는 전화로 주소 변경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체국 상담원은 다시 카드사에 전화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다시 카드사에 전화를 했고 다른 상담원은 우체국에서 한 말이 맞다고 했다.
난 처음 상담원이 왜 그럼 등기번호를 알려주었고 지금 내 카드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결국 그 상담원은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처음 상담원이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은 더 황당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처럼 집배원에게 연락이 오면 취소하고 다시 접수하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내가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나 자문했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준 첫 상담원의 불친절한 말투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요즘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안다.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일부 고객들 때문에 그들 역시 상처 입는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대응은 그런 이해마저 무색하게 만들 만큼 납득하기 어려웠다.
명백한 실수였음에도 단 한 번의 사과조차 없었다. 그녀는 내 말을 자르며 기계처럼 “전산에 없습니다”만 반복했다. 내가 느낀 건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상황을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아주 작고 간단한 것이 필요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그 말은 실수를 덮는 면죄부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것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그 한마디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정당함보다도 그저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말 하나였다.
잿빛으로 변하던 하늘에서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태양 빛과 함께 불어오던 더운 바람도 멈추었다.
유난히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내 마음도 빗소리를 듣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혼자만 불친절한 세상에 던져진 것 같았던 감정도 누군가의 작은 실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내 모습도 이제는 다 흘러간 오후의 빗물처럼 놓아주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아픈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