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5.병원에서 내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이유.

by 마부자

입원 16일차, 항암 2회, 방사선 치료 10회.


잿빛 하늘 사이로 비치는 흐릿한 빛과 밤새 굵게 내린 빗줄기.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창문 너머 산등성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


며칠째 이어지던 폭염의 아침 햇살이 오늘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이른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계란 두 개와 통밀빵, 두유 한 팩으로 조용히 아침을 해결했다. 이틀 간격으로 맞는 링거는 대개 다섯 시간가량을 팔에 매달고 있어야 하기에 오늘도 길고 묵직한 시간이 예고되어 있었다.


간호사는 링거를 준비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건 조금 아플 수도 있어요.” 그 말이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책을 펼쳐 들었지만 이내 팔을 타고 들어오는 묵직한 통증에 집중이 어려웠다.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통증이 예상보다 깊어 간호사를 불렀다.


속도를 조금 늦추자 통증은 그제야 잦아들었고 나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점심은 요즘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 일부러 붐비는 시간을 피해 조금 늦게 올라간다. 오늘은 마침 네 자리가 꽉 찬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내 옆에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고 이내 또 한 분이 와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인사와 함께 시작된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병 이야기로 이어졌고 나는 조용히 그 흐름 속을 지켜보았다.


처음 두 분은 같은 병실에서 지내는 사람들이었고 맞은편에 앉은 분은 전날 새롭게 입원한 환자였다. 당연히 병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환자 A,B 그리고 새로운 환자 C로 구분하려고 한다.

기존 환자 A가 건넨 첫 질문은 부드러웠다. “어디가 아프세요?”

새로운 환자 C가 조용히 대답했다. “전립선 암입니다.”

A는 기다렸다는 듯 탄식을 섞었다. “아이고, 고생 좀 하시겠네요.”


그 말에는 겉으로 보기엔 동정도 이해도 들어 있었지만 이내 이어진 말들에서 그 말의 온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도 우리 병실에 전립선 암으로 입원하신 분이 있었는데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새로운 환자 C는 멋쩍은 듯 짧게 웃으며 “그래요?”라고 되물었고 그 순간 그의 얼굴빛은 눈에 띄게 잿빛으로 가라앉았다.

곁에 있던 B가 눈치를 주듯 A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힘들다고는 안 하던데요?”

하지만 A는 멈추지 않았다. “아뇨, 전립선은 치료 전에 관장도 해야 하고 물도 500ml 넘게 마셔야 하고 소변도 참아야 해서 굉장히 불편하다니까요.”

B는 되받았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죠. 방사선 치료가 그렇게 아픈 건 아니잖아요.”

A는 또다시 말을 잇는다. “아프다는게 아니라 생활이 불편하다는 거지. 그리고 치료도 오래 걸리고 다른 암에 비하면 힘든 편이에요.”


나는 조용히 식판을 정리했다. 식사를 마쳤다기보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대화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내 마음은 이미 그 자리에 남기기엔 너무 불편해져 있었다.


어쩌면 내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환우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이유를 오늘 그 식당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 같다.


암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이 몸보다 마음을 먼저 쓰러뜨린다. 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 그 무게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주변의 이야기, 언론에서 접한 정보 혹은 지인들의 경험담은 '암'이라는 병을 이미 죽음과 고통으로 연결짓는다. 그러니 처음 병실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이미 마음 한가운데 거대한 공포를 안고 있는 것이다.


기존 환자 A는 아마 진심으로 위로하려 했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만큼, 자신이 겪은 만큼, 새로운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그 말을 듣는 C의 표정을 바라본 순간 그 어떤 조언도 위로도 아닌 ‘두려움의 전염’만이 남았다는 걸 느꼈다.


말이라는 건 때로는 칼보다도 더 깊이 들어온다. 같은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것은 격려가 되기도 하고 날 선 흉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 나는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 순간 C가 보여준 얼굴 빛과 어쩔 줄 몰라 하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남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쩌면 나는 그래서 병원이라는 이 낯선 공간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듣고 싶지 않은 말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게 이런 방식이 더 안전하다고 그렇게 혼자만의 위로를 건넸다.


내일 오전은 세 번째 항암 치료가 예정된 날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병원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


오늘 오전 혹시 모를 어지러움이나 구토를 막기 위해 오른쪽 팔에 작은 패치를 붙였다. 주사바늘이 꽂혀 묵직했던 그 팔에서 바늘을 빼낸 뒤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이 문장을 적는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항암은 세 번째와 네 번째가 가장 힘들다고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은 때때로 나를 뒤흔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떨고 있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상일 뿐이라는 것.


그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라 걱정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 그 그림자가 지금 나의 평온한 마음에 들어와 스스로를 위협하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내가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나는 지금껏 잘 해왔다.

지금도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내일도 분명 잘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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