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2.반쯤 건넌 치료의 다리 위에서 다음 걸음을~

준비했다.

by 마부자

입원 23일차, 항암 3회, 방사선 치료 15회.


아침 햇살이 창가로 강하게 밀려들었다. 산바람이 그 햇살을 끌고 병실 안까지 깊이 스며들었다.


이른 새벽, 나는 하루의 준비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편도암 치료를 위한 항암 6회, 방사선 30회의 긴 여정의 절반을 건너왔다.


이 길의 출발점에서, 나는 언제 시작하나 조급해했고 또 두려워했었다. 그 시간이 어느새 흘러 절반의 다리를 이미 건넜다.


나머지도 그렇게 건너게 되리라는 묘한 희망과 용기와 함께 이른 아침 병실을 나와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절반의 치료를 마친 오늘은 다시 한 번 몸을 되짚어보는 날이었다.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시작으로 CT와 채혈 그리고 가슴 엑스레이까지 모든 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병원 도착 시간이 오전 7시 모든 검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전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간, 딸이 도착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아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절반의 치료 결과를 듣는 자리에 꼭 함께하겠다는 아이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아빠의 병에 대해 의연한 척하지만, 나는 안다. 그 조용한 표정 너머로 아이가 얼마나 마음을 다잡고 있는지를.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서 아이는, 아빠의 아픔을 감당하려 애쓰고 있었다. 한 동안 이른 아침에 방문하고 돌아왔던 병원은 오후가 지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만 잠시 시간을 달리 했을 뿐, 이곳은 늘 아픈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길고도 지루한 기다림 끝에, 우리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담당 교수는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혈액검사 수치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조심스레 증상을 이야기했다.


음식이 쓰고, 자주 구토하고, 목이 따갑고, 끈적이는 침으로 도무지 음식을 넘기기 힘들다고.


교수는 말했다.

“미각은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2~3주 지나면 서서히 돌아올 겁니다. 끈적이는 침은 암이 생긴 부위 주변의 침샘이 손상되어서 생긴 현상이에요. 이 또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보통 1~2주차부터 염증이 심하게 오고 피부 손상이 오는데 3주차에 이 정도면 관리를 정말 잘하고 계신 겁니다.”


조금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유지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고 가글, 약, 식사. 못 먹겠다면 영양제라도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짧은 면담이 끝나고 앞으로 남은 항암 일정을 새롭게 조정했다. 이전까지는 매주 수요일이었는데 앞으로는 목요일 오전으로 바뀌었다.


병원으로 돌아와 딸과 함께 잠시 바람을 쐬기로 했다. 병원식으로 때우려 했던 식사를 딸의 제안으로 인근 번화가로 향했다.


한참을 걷다 딸이 검색한 메밀냉면집에 도착했다. 양념 하나 없는 물메밀을 주문했지만 첫 젓가락을 뜨는 순간


목으로 들어오는 그 느낌은 차가운 냉면이 아니라 날카롭게 매운 무언가였다.


딸에게 먹어보라 했지만 딸은 “전혀 안 맵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몇 젓가락도 뜨지 못하고 젓가락를 내려놓았다. 면은 고무줄 같았고 국물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맵게만 느껴졌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딸에게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병원에서 영양제도 잘 맞고, 죽도 잘 먹고 있어.”


먹지 못한 냉면보다 딸의 마음이 더 쓰렸을 것이다. 그 마음까지 덜어주고 싶어 나는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조금 더 밝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 딸과 함께 과일을 사 병실로 돌아왔다. 딸은 내일 오후 이비인후과 상담까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밤은 병실에서 나와 함께 자겠다고 했다. 같은 침대에 나란히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조금씩 줄어드는 체중보다 조금씩 커지는 마음이 더 소중한 날이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고 함께 아파하며 애써 밝은 얼굴을 지어 보이는 아이.


반쯤 건넌 치료의 다리 위에서 우리는 아주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서로를 붙들며 다음 걸음을 준비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길 아직 남아 있는 통증과 두려움.


하지만 오늘 밤, 딸과 함께한 이 따뜻한 시간은 분명 나를 다시 앞으로 이끌어줄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이 병실 안에서 아주 작은 사랑을 쌓아 올리며 하루를 건넜다.

이전 21화07.21.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