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25일차, 항암 4회, 방사선 치료 17회.
오늘은 네 번째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날이다. 익숙해졌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멀다. 항암 주사를 맞는 날만큼은 나도 모르게 온몸이 단단히 긴장하게 된다.
세 번째 주사 이후 내 몸에 일어난 낯선 반응들로 인해 거의 4일 동안을 침대에 누워 지낸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리 어딘가에서 은근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건 단지 고통의 기억만은 아니었다. 그 경험이 나를 단련시켰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세 번째 항암이 내게 남긴 증상들이 더 이상 미지의 것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는 희미하지만 단단한 믿음을 품고 병원에 도착했다.
오전 9시. 삼성병원 항암 주사실은 여느 날처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들 이름이 불리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눈빛들 사이에서 나도 조용히 내 차례를 기다렸다.
곧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나는 익숙한 듯 침대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천천히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시스플라틴. 그 이름이 주는 묘한 무게감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도 그렇게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내 몸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들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받아들이는 것도 견디는 데 있어 분명한 힘이 된다.
어쩌면 나는 오늘 아주 작은 용기 하나를 더 가진 채 이 자리에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3시간 30분간의 주사가 끝나고 방사선 치료실로 향했다.
느낌 탓인지 원래 그랬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첫날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게 방사선치료까지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이틀 전 아침 딸아이가 병원으로 들어오며 사온 샌드위치 봉지 안에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 하나 더 들어 있었다. 서비스로 함께 들어 있던 쿠키 두 조각.
그 조그만 단맛이 의외로 목 넘김이 괜찮아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병실로 가던 길에 그 카페에 들러 쿠키를 사왔다. 병원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익숙한 온기와 향이 먼저 나를 반겼다.
내가 그제 먹었던 서비스 쿠키 이야기를 꺼내자 사장은 설탕을 쓰지 않고 직접 구운 수제 쿠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입에 잘 맞는다니 다행이네요”라는 말과 함께 오늘도 조용히 쿠키 몇 조각을 더 넣어주었다. 작은 친절이 마음에 오래 남는 날이었다. 서비스에 좀 더 묵직해진 작은 쿠키봉지를 들고 까페를 나서며 생각했다.
딸은 자신이 이 공간에 잠시 머물다 갔음을 여기저기 흔적처럼 남겨두고 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오후엔 예전에 함께 일하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내 블로그를 알고 있는 그는 한동안 정신없이 바쁘다가 어제에서야 내 일기를 보고 깜짝 놀라 연락을 했다고 한다.
조심스러운 위로와 걱정의 말이 오갔고 그는 마침 다음 주 서울에 업무가 있다며 병문안을 오겠다고 했다.
사실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입원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터라 정중히 사양했지만 20년을 함께 한 후배의 진심 어린 말 앞에서 결국 병실 주소를 알려주었다.
항암 주사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몸의 무거움과 혼란. 그 흐름을 알기에 오늘 아직은 괜찮은 상태일 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기로 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천천히 읽으며 댓글을 달고 이 짧은 평온의 틈을 조용히 누렸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컨디션은 이 병의 고집스러운 기분처럼 예측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오늘의 평온을 소중히 다루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나, 참 잘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 나의 가장 든든한 위로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