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37일차, 항암 5회, 방사선 치료 25회.
아침부터 내리쬐는 강한 햇살이 병실 창가로 쏟아져 들어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병원으로 향했고 익숙한 절차처럼 치료를 마친 뒤 병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아내가 1년 전 수술했던 부위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대구의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1시에 입원 수속을 마치고 2시에 검사실로 들어갔다는 짧은 연락이 왔다.
그 모든 소식이 내 마음에 작은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몇 번을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한 딸의 노력 덕분에 나는 덜 불안한 채로 이 기다림을 견딜 수 있었다.
병원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빛이 조금은 덜 뜨겁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묵직한 마음 한 켠을 살며시 덜어준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일 것이다. 오늘은 그 사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하루였다.
월요일부터 치료 부위 피부에 작은 물집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다섯 번만 남은 방사선 치료의 막바지라 해야 다행일까?
아니면 그렇게도 신경을 쓰고 관리했는데도 결국 다른 환우들이 겪었다던 증상들을 나 역시 피할 수 없었던 것뿐일까.
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이마저도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검사실에 들어갔던 아내가 나왔다는 소식이 딸에게서 전해졌다. 다행히도 출혈 부위는 잘 봉합되었고 특별한 이상도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올려져있던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스르르 굴러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오늘 하루 병원에 입원해 조영제 부작용 여부를 지켜보고 이상이 없다면 주치의는 예정대로 내일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 순간, 딸과 아내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다른 병실에서 미소 짓듯이. 감사라는 감정은 그렇게 굳이 소리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법이었다.
마치 오래도록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펴는 순간처럼, 오늘 하루는 우리 모두에게 작은 안도의 숨을 허락해 준 날이었다.
오후에 이전 직장에서 거래처 고객으로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가족처럼 가까운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업무로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며 어느새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분이 된 분이다.
원래는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연락을 하지 못하니 서운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먼저 전화를 주신 것이다.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형님 앞에서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결국 지금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형님은 몰랐다며 연신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건네셨다.
나는 오히려 웃으며 "완치되고 연락드리려 했다"고 답했고 그렇게 잠시나마 예전처럼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눴다.
형님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고 나는 병실 한구석에서 따뜻한 온기를 건네받는 기분이었다.
전화를 끊으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목소리 하나로도 오늘 하루는 덜 외롭고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이 병실에 햇살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아내의 입원 결과가 좋았다는 소식과 오랜만에 편한 형님과의 대화가 내 마음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무거운 돌을 하나씩 내려놓은 듯 조금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이 병실 안에 잔잔히 퍼져갔다. 치료의 피로는 여전했지만 오늘은 그 피로를 덮어줄 만큼의 온기가 있었다.
이 작은 회복의 순간들이 모여 언젠가 더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