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7.병원은 아픈 사람만큼
아픈 마음들이 모인곳

by 마부자

입원 39일차,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27회.


어제의 흐렸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오늘 아침은 눈이 부실 정도로 청명했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온 햇살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매미 소리, 까치와 까마귀의 엇갈린 울음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여름의 심연에서 잠을 깨우는 듯했다.


오늘은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는 날이다. 7월 2일, 첫 항암을 시작하던 날.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었다.


“과연 여섯 번을 다 버텨낼 수 있을까.”
그 끝이 오늘이라는 게 아직도 조금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밤새 잠은 깊지 않았지만 어제 주치의의 “암세포는 사라졌다”는 그 한마디 덕분에 몸이 꽤 가볍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병원으로 향했고 주사실에 누운 오전 9시, 시스플라틴이 다시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한 번도 반가웠던 적 없던 이 약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익숙하고 고맙게까지 느껴졌다. 보통은 주사를 맞는 동안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깜빡 잠에 빠지곤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마지막’이라는 감정이란 건 늘 그렇게 마음을 번잡하게 만든다.
게다가 오늘 내 자리는 안내데스크 바로 맞은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문의하는 목소리들이 병실 안쪽까지 흘러 들어왔다. 책의 문장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외부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예약 없이 병원을 찾아온 환자와 간호사 사이의 갈등이었다. 보통은 항암치료가 예약제로만 진행되지만, 첫 항암 치료가 잡히는 날에는 항암 이후에 다음 일정이 예약되므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환자 한 사람당 3시간 이상이 걸리는 치료를 받기 때문에 한 명의 예외도 병동 전체의 흐름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안다.


첫 항암을 받던 날, 나 역시 1시간 이상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초조함. 그때의 불안.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조금은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친절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도 인내한다. 하지만 간혹 말투 하나에 감정이 상하고 기다림 하나에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라는 말 뒤에는 사실 ‘내가 아프다는 걸 좀 알아달라’는 절박함이 숨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반면 간호사들은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오간다. 시간마다 바꿔 달아야 하는 약물 주입기가 알람을 울려대면 그 소리를 따라 병동을 뛰듯이 걸어 다녀야 한다.


그 와중에도 보호자들은 간호사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때로는 다급하게 묻는다.
"얼마나 남았나요?"


그 질문이 단지 시간을 묻는 말이 아니라 기다림을 견디는 사람의 불안이 만든 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간호사에게 그 질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피로일 것이다.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그 짧은 질문 하나에 응대하고 설명하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들고 그 시간 동안 간호사는 또 다른 환자의 알람을 놓치게 된다는 것을.


환자도 힘들고, 보호자도 힘들고, 간호사도 힘들고 물론 의사도 힘들다.


서로가 누군가의 고통을 짐작만 할 뿐, 대신 짊어질 수는 없는 공간.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조금씩 상처 입고, 또 조금씩 단단해진다.


어쩌면 병원은, 아픈 사람들만큼이나 아픈 마음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그 마음들 사이에서 조용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약간은 소란스러웠던 공간에서, 3시간 30분에 걸친 주사액이 모두 몸속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능숙한 손길로 내 팔에 꽂혀 있던 주사바늘을 뽑았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나는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고, 간호사도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환자분들이 기다림에 지치셔서 그러시는 거, 저희도 이해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 짧은 인사에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말은 그렇게 끝났지만 마음속에는 마지막 항암을 맞은 스스로에게 조용히 약속을 걸었다.


‘다시는, 여기에 다시 오지 않기를.’


그 다짐을 품은 채, 나는 삼성서울병원 항암주사실의 문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곧이어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바라본 한강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이 마지막 방사선은 아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한강을 지날 때마다 창밖을 바라보는 게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힘들다고 알려졌던 여섯 번째 항암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오늘.


지난 한 달간,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오가던 그 길이었다. 오늘은 유독 천둥오리 가족들이 유유히 노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물살 위를 가르며 떠다니는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위로처럼 느껴졌다.


병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인근 다이소 건물 앞에서 차를 세워달라 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미각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간이 센 음식은 넘기지도 못하지만, 며칠 전 식당에서 나온 떡국과 국수를 먹은 것이 그나마 무난했던 기억이 났다.


식당가를 몇 군데 돌아보다가 ‘옹심이 칼국수’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메뉴 사진을 보니 다데기 없는 맑은 칼국수였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조용했고 직원들이 식사 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식사 되나요?”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을 다닐 땐 혼자 식당에 가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조금 달랐다. 테이블에 혼자 앉아 주문을 하고, 눈 앞에 놓인 8가지 반찬을 바라보며 나는 잠깐 멈칫했다.


고추가루에 가볍게 무쳐진 어묵볶음 한 조각. 혹시나 괜찮을까 싶어 입에 넣은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씁쓸한 침이 입 안 전체로 번졌고, 염증 부위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얼른 물을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옹심이 칼국수가 나왔다. 다행히 그 국물과 옹심이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혹시 다 못 먹고 남기면 어쩌지.”
식당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도 했던 그 걱정은 기우였다. 나는 조용하게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단순한 점심 한 끼였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용기를 냈다. 처음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항암 여섯 번째 날. 그렇게 오늘의 나는, 아주 작은 일상 하나를 다시 해냈다.


그리고 다이소에 들려 박스테이프와 위생 비닐팩을 구매했다. 만약 몸의 컨디션이 더 나빠지지 않는 다면 다음주에 퇴원을 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병실에 있는 짐을 먼저 택배로 보내기 위해 짐을 싸려고 한다. 물론 아직은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기에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의 평온함에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나에게는 충분하다.


오늘, 나는 여섯 번의 항암을 다 해냈다.
내가 해냈다. 그리고 이 말을,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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