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6.치료의 끝에서 마주한 건
새로운 싸움이었다.

by 마부자

입원 49일차,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30회. (25.08.12 치료 완료)


열흘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24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겠다고 명확히 다짐한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는 ‘오늘’을 기록하는 일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다.


그것은 단순히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글을 단 한 줄이라도 읽어주는 누군가에게 내가 건네줄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답례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항암을 마친 날, 나는 방심했다. 몸이 나쁘지 않다 싶어 잠시 외출을 하고 외식을 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8월 8일 새벽, 입안 가득 차오르는 끈적이는 침은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구내염의 상처를 자극하는 그 침은 매 2시간마다 구토를 불러냈다.


비워낼 게 없어 결국 노란 위액만이 쏟아져 나왔지만, 몸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을, 침대에만 붙어 링거에 매달린 채 버텼다.


물 한 모금조차 삼킬 수 없는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겨우 주말을 넘기고 남은 방사선 치료 두 번을 마친 뒤,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끝’이라고 믿고 싶었던 이 치료가 사실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목의 피부를 부지런히 보습제로, 습진약으로 관리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치료의 마지막 무렵이 되자 피부는 갈라지고 염증이 번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구내염과 구토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밤에는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목 전체에 약 2시간 간격으로 밀려드는 가려움.


그 고통은 이성보다 본능을 더 자극했다.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은 목을 긁는다.


긁는 순간 찾아오는 순간적인 쾌감은 환각제에 취한 듯 짧고 강렬했다. 그러나 그 5초의 쾌락은 곧 10배의 통증과 쓰라림으로 되돌아왔다.


화끈거리는 열과 함께 더 깊은 상처가 남았고, 다시 약을 바르는 순간 두 번째 고통이 피부를 태웠다. 살갗이 벗겨진 부위에 약이 스며들며 찾아오는 그 쓰라림.


한참이 지나 약에 감각이 마취될 즈음이면 통증은 조금 잦아들었지만, 이미 잠은 깨버린 뒤였다. 그때부터는 어지럼증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구토로, 약 열흘 동안 나는 입으로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결국 삼성병원에서는 마지막 치료 날에 당분간 먹을 수 있도록 특별히 이유식을 처방해주었다.


이름은 ‘엔커버-옥수수맛’. 팩 안에 담긴 그것은 이유식처럼 보였고, 실제로는 두유와 비슷한 질감을 가진 일종의 영양식이었다.


항암치료 중에 도무지 음식을 먹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 했다.


나는 그것을 빨대가 달린 작은 보틀에 담아 하루하루 조금씩 삼켰다. ‘먹었다’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버텼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며, 피와 노란 위액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마다 거울 속의 초라한 내 모습과 마주할 때면 솔직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끝났다고 믿었던 순간이 오히려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마지막 방사선 치료라니, 그 표현이 나를 잠시 속였다. 치료가 끝났다는 안도감 뒤에는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다.


사실 그날은 ‘마지막 치료’가 아니라 ‘가장 많은 방사선이 내 몸에 축적된 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나는 미처 간과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치료의 완주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몸과 마음을 갈아 넣은 여정이 이제부터 다시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내 몸속에 자리 잡았던 암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이후, 다시 시작된 첫 치료는 기쁨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열흘로 이어졌다.


그 시간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난 8월 12일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오늘까지 닷새 동안은 더 이상 치료 없이 병원에서 링거에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목 속의 염증은 아주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입안을 괴롭히던 끈적이는 침도 이제는 덜 분출된다. 다행히 엔커버를 매 끼니마다 조금씩은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늘 따라붙던 어지럼증도 한결 사라졌다.


하지만 고통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갈라졌던 피부는 목 뒤쪽까지 넓게 번졌고, 가려움은 여전히 내 잠을 쪼갠다.


대신 미리 벗겨졌던 부분은 검게 손상된 피부가 떨어져 나가며 새살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회복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예상치 못한 변화.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뒷목에서부터 시작되는 뒷머리 부분의 모발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 모든 치료의 흔적들이 이제 내 몸에, 그리고 내 삶에 오래도록 남게 되리라는 것을.


치료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건 안도감이 아니라 새로운 싸움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이 길이 단순히 병을 몰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몸과 마음 모두의 긴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