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마지막 치료를 끝내고 안도의 숨을 내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실이 찾아왔다. 몸은 무너졌고 마음은 허전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치료가 끝났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힘든 걸까.” 그때 알게 되었다. 치료와 치유는 전혀 다른 언어라는 것을.


치유.

치료는 의학의 영역에 속한다. 약물과 주사, 기계와 의사의 손길이 몸속의 병을 겨냥한다. 그러나 치유는 나의 영역이다.


고통 속에서 무너진 마음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는 시간. 치료는 병을 멈추지만 치유는 삶을 다시 이어 붙인다. 그 차이를 나는 뼈저리게 체감했다.


치유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유는 고통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상실을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너진 자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위에 다시 작은 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행위다. 어제보다 조금 덜 힘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느린 반복 속에서 치유는 자라난다.


치유의 시간은 늘 조용하다. 누군가의 격려처럼 크고 눈에 띄는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자 앉아 있을 때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밥 한 숟가락을 삼키는 것이 어제보다 덜 힘들었다는 사실. 밤새 뒤척이다가도 새벽녘에 잠깐이나마 깊은 잠에 빠졌다는 사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나를 붙든다. 치유는 거대한 회복이 아니라 아주 작은 증거들의 연속이다.


또한 치유는 내가 다시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예전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햇빛 한 줄기에도,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에도 나는 잠시 멈춰 선다.


고통을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세상은 더 선명해진다. 상실이 크면 클수록 남아 있는 것들의 빛은 더 강렬해진다. 치유는 그 빛을 알아보는 눈을 내게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유는 기다림을 가르친다. 서두른다고 해서 흉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듯, 마음의 상처도 억지로 닫히지 않는다.


기다림 속에서만 치유는 제 속도를 찾는다. 마치 겨울의 얼음이 스스로 녹아내려야 봄이 오는 것처럼. 나는 그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불안을 견디고 희망을 연습한다.


치유는 끝내 나를 달라지게 만든다.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로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니 치유란 단순히 병을 이겨내는 과정이 아니라, 고통과 공존하며 다시 삶을 살아내는 힘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에게 치유는 이제 막 시작된 또 다른 여정이다.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삶이 곧 평온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치유라는 이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 안의 상처는 외부의 손길이 아니라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힘으로만 메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치유’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치유는 완치의 증명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겠다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조용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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