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53일차,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30회. (25.08.12 치료 완료후 8. 21 퇴원)
밤새 잠을 설쳤다. 잔기침이 몇 차례 이어졌고, 남은 목 통증이 몇 시간마다 찾아왔지만, 사실은 그것들이 이유가 아니었다.
설레임이 더 앞섰다. 마치 긴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처럼. 새벽부터 불어온 선선한 바람이 병실 커튼을 스치며 오늘이 다른 날임을 알려주었다.
낯설던 병실이 이제는 익숙한 내 방처럼 느껴질 즈음,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창밖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은 지난 두 달 남짓한 시간을 조용히 떠올리게 했다.
6월 30일, 딸과 아내와 함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동대구역에서 수서역으로, 다시 낯선 병원까지 이어졌던 발걸음.
그날부터 시작된 53일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불청객처럼 찾아왔던 검은 존재가 내 안에서 사라졌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이 아침은 충분히 빛났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씻은 뒤, 챙겨야 할 약들과 서류들을 정리했다. 올 때는 헐렁하던 캐리어가 오늘은 묵직하게 가득 찼다.
이미 택배 세 박스를 먼저 부쳤음에도, 가방과 베낭까지 무거워졌다. 병원과 병실을 오간 것뿐인데도, 이곳에서 보낸 날들의 흔적이 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원장과 면담을 하고 정산을 마쳤다. 여전히 마음 한켠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굳이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제는 담아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내 팔에 수없이 주사바늘을 꽂아주던 간호사들, 불쑥 찾아와 안부를 물어주던 그 따뜻한 얼굴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와 다른 건, ‘다시 보자’는 말 대신 “이제 오지 마세요”라는 그들의 웃음 섞인 작별 인사였다. 나도 웃으며 답했다. “다시 보지 않기를 바래요.”
그 말은 작별이자, 서로를 향한 가장 진심 어린 축복이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병원차에 몸을 싣는 순간 53일간의 무게가 손잡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일 아침 7시, 요양병원에서 삼성병원까지 나를 실어 나르던 기사님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늘 묵묵히 앉아 있던 그 뒷자리가 오늘만은 다르게 느껴졌다.
수서역 플랫폼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사람들의 숨소리와 분주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내가 머물던 세계와는 달리 세상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기차에 몸을 싣자 곧 잠이 몰려왔다.
밤새 설친 탓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긴장이 풀려서였을 것이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김천구미역을 지나고 있었고 창밖 풍경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대구의 빌딩 숲과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곧 동대구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비로소 집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전해졌다. 베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니 평일 오후의 대구는 여전히 분주했다.
정장을 입은 직장인, 가방을 멘 학생, 장을 보러 가는 노인들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세상은 내가 잠시 비켜나 있어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다만 나의 시간만이 잠시 멈추어 있었을 뿐.
이제 다시 그 흐름 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집 앞 지하철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마자 눈에 익은 건물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왔다.
편도암 1차 진단을 받았던 병원, 약국, 늘 환한 불빛을 켜둔 24시간 마트, 노브랜드 햄버거 가게, 그리고 그 앞에서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노점 할머니들까지.
잠깐이었지만, 그 모든 풍경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마치 내게 “잘 다녀왔냐”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53일 전에도 늘 있던 풍경이지만, 오늘은 다르게 다가왔다. 아파트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현관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다.
고작 두 달이었는데 혹시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농담 같은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그대로였다. 바뀌지 않은 숫자들 위로 손가락을 누르자 “띠익”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후츄”가 현관에 나와 있었다.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건 아니었다. 그저 무심한 듯 바라보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하지만 모른 척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의 그 공기 속에 후츄의 발자국 소리까지 겹쳐지니 드디어 내가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았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버텨온 긴장감이 순간 풀리자 다리에 힘이 빠지며 약간의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오늘 아침부터 기차, 지하철, 도보까지 이어진 이동 끝에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 오랜만에 꼬박 다섯 시간을 외부에서 보낸 셈이었다.
사실 딸이 차로 데리러 오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괜찮다고 우기듯 기차를 고집했다. 스스로 돌아오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작은 자존심 같은 것이 있었던 걸까.
그러나 집에 들어선 순간, 곧 후회가 밀려왔다. 53일 사이 12kg이 빠진 몸은 생각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어지러움과 무력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파에 몸을 기댄 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 기력이 조금 돌아오자 캐리어를 열고 가장 급한 짐만 챙겨 정리했다. 그러나 금세 다시 지쳐 1차 정리에 만족하고 남은 짐은 방으로 밀어 넣었다.
나머지는 내일의 몫으로 남겨두고 아내의 퇴근을 기다렸다.
저녁 무렵,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왔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포옹을 나누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의 눈가가 붉어졌다.
수척해진 내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너진 듯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잘 치료받고 돌아왔어. 이제부터 다시 체력 키우면 돼.”
그 말에 아내도 이내 눈물을 거두고 예전처럼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퇴근한 딸이 이어 도착했고 막내도 야간 자율학습 전 잠시 집에 들러 얼굴을 내밀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물론 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각으로 인해 사골국에 밥을 말아 먹는 소박한 한 그릇뿐이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저녁이었다.
53일의 시간을 홀로 이겨내고 돌아온 자리 그 빈자리를 가족의 따뜻한 웃음이 채워주고 있었다. 집은 결국 이런 곳이었다.
무너져도 괜찮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은 나의 가장 단단한 안식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