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2.돌아온 일상에서 느껴진
열기와 감사함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그리고 퇴원 1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익숙했던 내 자리에 돌아왔지만 그 익숙함조차 몸의 불편을 잠재우진 못했다. 새벽마다 목의 통증과 가래, 입안의 염증이 번갈아 나를 깨웠다.


마르는 목을 물로 적시고 화장실을 오가다 보니 잠은 얕게 끊어졌다. 두세 번의 뒤척임 끝에 눈을 뜨니 창가로는 이미 아침의 빛이 밀려오고 있었다.


잠자리가 불편해 아내 곁에서 자는 것이 미안해졌다. 괜찮다는 아내의 말에도 오히려 내가 그녀의 잠을 방해할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급히 서재 한켠에 작은 침대를 꾸렸다. 낯설지만 나만의 밤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 서재라는 이름이 새삼 달리 다가왔다.


책과 글이 머무는 이곳이 이제는 내 회복의 또 다른 잠자리이자 쉼의 장소가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맞이한 아침 풍경이었다. 아내의 출근 준비하는 소리, 막내의 분주한 등굣길 채비가 낯설 만큼 그리웠다.


나도 자연스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와 두 사람과 함께 아침을 열었다. 아내와 막내가 동시에 "잘 잤느냐"고 묻는 목소리에 나는 자다 깨다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서로 손을 흔들고 밝은 웃음을 건네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문이 닫히고 난 뒤 잠시 우두커니 서서 회색 현관문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구쳤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환희였다.


내가 반드시 치료를 잘 끝내고 다시 이 자리에서 가족을 보내고 맞이하리라 다짐하며 버텨온 시간. 그 시간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전해오던 감정을 겨우 가라앉히고 아내가 정성스레 우려 놓은 사골국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소금 한 톨 들어가지 않은 맑은 국물인데도 내 입에는 유독 짜게 다가왔다.


요즘 내 미각은 마치 고장 난 나침반처럼, 모든 방향을 짠맛으로만 가리키는 듯하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 하나. 방사선 치료로 사라진 미각은 돌아오는 순서가 있다고 했다. 쓴맛, 신맛, 짠맛,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맛.


정말 신기하게도 한동안 세상의 모든 음식이 쓰게만 느껴지더니 어느 날은 시큼한 맛이 스쳐갔다.


지금은 온통 짠맛이 강하게 밀려오고 어제는 아주 잠깐이지만 양쪽 어금니 끝에서 단맛이 번쩍 지나갔다.


인체는 마치 묵묵한 장인 같다. 무너진 감각을 제 순서대로 다시 맞추고 잃어버린 것을 서서히 되돌려준다.


불완전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회복의 리듬. 그 과정을 내 몸이 이렇게 증명해내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이 얼마나 놀라운 생명체인지 실감하게 된다.


병원에 있을 때라면 오전은 늘 링거와 함께 침대에 묶여 보내던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다르다.


더 이상 팔에 꽂힌 바늘도 오후 세 시까지 강제로 눕혀 두는 침대도 없다. 그러나 자유는 언제나 달콤하지만은 않다. 낯선 여백은 때로 더 길고 버겁게 다가온다.


아내는 당분간 가사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가만히 앉아 있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식탁 위 아침 흔적이 눈에 밟혀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까지 채워 넣었다.


잠시 더 힘을 내어 청소기라도 잡아볼까 했지만 일어나 앉는 순간 다리가 풀리고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몸은 아직 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소파에 몸을 기대고 책을 펼쳤지만 글자들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정오가 되었다. 점심은 죽으로 정했다.


집 앞 본죽에 전화를 걸어 소금 한 톨도 넣지 말라 부탁했더니 다행히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요즘 세상은 환자의 요구마저도 세심하게 반영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죽이 준비되는 동안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함께 밥을 먹을까 싶어 반찬을 사다 놓으려 했지만, 오늘은 집으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불금 저녁은 혼밥으로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딸의 당당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내가 없는 동안 매일 저녁 엄마의 식사를 챙기며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딸. 그리고 이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려는 그 마음 씀씀이가 대견해서 오늘 하루 두 번째로 가슴이 울컥했다.


집에 돌아온다는 건 이런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병실의 긴 기다림 끝에 결국 내가 돌아오고 맞이하게 된 풍경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눈물겹게 따뜻했다.


창밖의 뜨거운 햇살을 바라보다가 목의 벗겨진 피부에 보습크림을 바르고 자외선 차단제까지 덧발랐다. 조심스레 집을 나서 불과 5분 거리의 죽집과 반찬가게를 다녀오는 길. 그 짧은 외출에서 나는 대구의 여름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다.


내리쬐는 햇살은 숨을 막히게 할 만큼 뜨겁고 그늘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숨이 막히는 열기가 그곳에도 가득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흘렀고 이내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죽집에 들른 후 반찬가게와 마트까지 차례로 들를 계획이었지만 결국 포장해 둔 죽만 들고 서둘러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지난 53일 동안 병원에서 치료라는 이름의 여름을 보냈다. 하루하루 에어컨 바람에 의지하며 버틴 날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감사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원한 바람 속에서 나는 아팠지만 적어도 이 무더위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몸을 던지고 에어컨을 켰다. 겨우 30분 남짓의 외출이었는데 그 시간만으로도 내 체력이 얼마나 바닥나 있는지를 확인하기엔 충분했다.


땀이 마르기도 전에 몰려온 탈진감 속에서 다시 한 번 지금 내 몸이 지닌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지쳐 돌아와 편히 몸을 기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위에 지친 오늘이 조금은 위로받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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