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3.한 끼의 풍경은 달라졌지만
마음은 변함없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그리고 퇴원 2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25년 5월 30일 편도암 확진.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30회 완료


밤새 뒤척이며 더위와 목의 통증 속에서 잠을 놓쳤다. 정해진 알람처럼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을 때 새벽의 공기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창가에 서서 오랜만에 마주한 풍경—옆 단지의 건물, 통을 갈아 끌어내는 청소차의 요란한 소리—모두가 익숙하면서도 오늘은 낯설게 다가왔다.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뜨거운 바람은 나를 밀어내듯 집 안을 파고들었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듯 짧은 명상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루틴을 다시 이어가는 순간이었다. 서재의 의자에 앉으니 내 마음이 조심스레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도 하루를 시작할 힘을 찾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회복의 징표인지도 모른다.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양치와 탄튬가글을 마친 뒤, 목안을 자세히 보았다. 예전엔 커다란 혹이 버티고 있던 자리에 이제는 하얗게 변한 염증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미세한 통증은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옅어져 가는 듯한 그 흐름에 감사함이 일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미각의 귀환이었다. 한때는 모든 음식이 하나같이 인공 플라스틱 같은 맛으로 다가와 입 안에 넣는 일이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최소한 첫 맛만큼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국물의 따뜻함, 채소의 은은한 단맛이 아주 조금이나마 고유의 빛깔로 다가와 식사라는 행위가 다시 ‘맛’이라는 기쁨을 담기 시작한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매일 주사를 맞으며 치유를 이어가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이렇게 마음 편한 집에서 맞이하는 일상이 또 다른 치유가 된다는 걸 몸으로 실감한다.


비록 완벽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조금씩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작은 기쁨처럼 내 안을 채워주었다.


오후에는 아내와 딸과 함께 집 앞 대형마트로 향했다. 당분간은 면역력 강화를 위한 식재료를 별도로 챙겨야 했기에 오늘은 그 준비의 첫 걸음이었다.


매일 아침, 야채와 과일을 갈아 천연 주스를 만들어 마시기로 했고, 시작은 단순했다. 브로콜리, 당근, 토마토, 바나나. 이 네 가지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보았던 ‘몽땅주스’처럼 일곱 가지 채소를 한꺼번에 갈아 넣을 용기는 아직 나에게 없었다.


대신 지금의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단순하면서도 부담 없는 재료로 꾸려가는 편이 더 어울렸다.

마트 안을 거닐다 보니 유혹은 많았다. 잘 차려진 가공육과 화려하게 포장된 인스턴트 식품들, 그 익숙한 냄새와 색깔들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레 선이 그어졌다. 아마도 앞으로 아니 어쩌면 평생 그 음식들은 나와는 멀어질지도 모른다.


잠시 서운함 같은 것이 스쳤지만 곧 묘한 결심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새로운 음식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몸이 보내는 신호 같은 결의였다.


나의 일상이 달라진 만큼 식탁 위의 풍경도 바뀌어야 했다. 그 앞에서 나는 오래 머뭇거리지 않았다. 선택은 분명했고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먹지 못한다고 해서 가족들까지 내 식탁을 따라오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저녁 메뉴로는 보쌈을 준비하기로 했다.


고기를 사면서도 예전 같으면 김치에 싸 먹자고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양배추를 데쳐서 싸 먹는 방식을 권했다. 다행히 아내와 딸 모두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인공 쌈장을 듬뿍 찍던 지난날과 달리 오늘은 저염 된장을 곁들여 먹기로 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안에는 ‘함께 건강하게 먹자’는 새로운 합의가 담겨 있었다.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늘 함께하는 세 식구였지만 차 안의 자리는 달라져 있었다. 운전석에는 나 대신 딸이 앉아 핸들을 잡고 있었고 그 옆자리에는 아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낯설게 느껴졌지만 곧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 감정을 명확히 이름 붙일 수는 없었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울림이었다.


내가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모녀가 나누는 두런두런한 대화가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고 동시에 내가 여전히 그 원 안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아마 그것은 ‘잃음’의 슬픔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였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알았다.


새로운 자리에서도 가족은 여전히 나의 중심이라는 것을.


장을 마치고 돌아와 식재료를 하나씩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저녁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간을 볼 수 없는 내 입은 여전히 무력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작은 거들 뿐이었다.


대신 아내는 분주히 움직였다. 고기를 삶고 김치를 물에 헹궈 매운 기운을 걷어내는 손길 속에는 나를 향한 세심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차려진 식탁 앞에 가족 네 명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치료로 떨어져 지내던 시간을 세어 보니, 무려 54일 만의 저녁이었다.


식탁 위 음식들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김치 대신 양배추, 쌈장 대신 저염된장. 그러나 그 작은 변화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형태의 만찬이었다.


한 끼의 풍경은 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큰 축복이었다.


서로의 웃음과 대화가 밥상 위에 놓인 음식보다 더 든든한 양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다시 모인 이 자리는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라 살아남아 이어가는 삶 그 자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