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5일차의 기록
밤을 꼬박 새운 탓에 몸은 기진맥진했지만, 이상하게도 잠은 오지 않았다. 피곤함은 졸음을 밀고 들어왔지만 그 신호가 나를 하품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입을 크게 벌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구내염이 칼날처럼 입안을 후벼 파며 고통을 쏟아냈다.
하품 하나에도 가차 없는 통증이 뒤따라 졸리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기묘한 악순환 속에서 아침을 맞았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서 처방해준 강한 진통제를 삼켰다. 약효가 온몸을 휘감자 비로소 잠이 찾아왔지만 그마저도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새벽마다 목의 건조함에 눈을 뜨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세 시간을 채우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전날처럼 완전히 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덜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거실 베란다에 섰다.
햇살에 젖은 창밖 풍경이 내게 또 다른 루틴을 속삭이는 듯했다.
아내와 막내가 현관문을 나서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아침이 시작됐다. 통밀빵 한 조각과 삶은 달걀 두 개, 두유와 갈아 만든 야채주스.
단출하지만 스스로 챙긴 식사 앞에서 이상하게도 묘한 충만함이 스며들었다. 예전처럼 풍성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여전히 먹는 즐거움은 잃었지만 오늘도 내가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처럼 다가왔다.
이제부터는 내 일상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통증과 건조함, 불면의 파편들이 내 곁에 머물겠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다시 일상으로 스며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의 아침이 그 작은 증거였다.
오전에는 “저항”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오래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겼다. 몸의 저항, 마음의 저항, 그리고 상황이 주는 저항까지. 쓰고 나니 조금은 후련했다.
그 후엔 병원에서 읽다 멈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아직 집중하기엔 부족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행위 자체가 나를 일상으로 이끄는 작은 훈련 같았다.
점심을 준비하기 전, 어제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다. 앞으로는 모든 음식의 염도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하기에 가정용 염도계를 샀다.
그리고 요즘 들어 믹스커피를 다시 즐기기 시작한 아내의 혈당을 위해 혈당계도 함께 준비했다.
이제는 가족의 건강뿐 아니라 내 몸도 함께 잘 챙기는 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일과가 된 셈이다.
호기심이 앞서 며칠 전에 끓여 두었던 미역국의 염도를 먼저 측정해 보았다. 나를 위해 일부러 간을 하지 않고 끓였던 국인데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는 이상하게 짠맛이 밀려와 늘 의아했다.
결과는 0.3. 의료진이 권하는 권장치인 0.5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일반적인 식당 음식이 1, 집밥이 보통 0.8 수준이라고 하니, 내가 먹는 국은 오히려 너무 싱거운 편이었다.
순간 낯설게 다가왔다. 짜다고 느낀 건 국이 아니라 내 미각이 무너져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혀의 감각은 사라지고, 머릿속 기억만이 짠맛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착각. 염도계의 숫자가 차갑게 진실을 알려주자 그동안 내가 느꼈던 혼란이 조금은 정리되는 듯했다.
입안의 고통과 함께 무너져 가는 감각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내 몸은 여전히 싱거운 음식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건강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병이 빼앗아간 것들이 있지만 대신 배우고 얻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도착한 혈당측정기는 내일 아침, 공복 상태에서 아내와 나의 혈당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특히 아내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내 치료 과정이 끝났다고 해서 그녀의 건강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금이 함께 지켜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오후에는 책장을 다시 열어 잠시 독서를 이어갔다. 글자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몇 장을 읽는 데 오래 걸렸지만 그 시간 자체가 내겐 소중한 회복의 징표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낮은 염도로 끓인 미역국을 아내는 나와는 다른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같은 식탁이었지만 서로의 접시는 달랐다. 어쩌면 이 작은 차이가 지금의 우리를 보여주는 풍경일지도 몰랐다. 저녁을 마치고 설거지를 함께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말이 빌미가 되어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평소라면 웃으며 넘어갈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겐 유난히 예민한 하루였고 그 말들이 깊은 상처처럼 스며들었다.
이야기를 끝낸 뒤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조차 지금의 내겐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병이 남긴 통증은 몸에만 머무는 게 아니었다.
마음에도 흔적을 남기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조차 버겁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내일 아침, 우리는 다시 혈당계를 손에 들고 함께 서 있을 것이다.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어긋나더라도 결국 다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라는 것을.
오늘의 상처가 깊더라도 내일의 루틴 속에서 다시 아물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