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7.서로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또하나의 노력.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6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깊은 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 밤을 꼬박 새우고 나면 그 다음날은 몸이 탈진한 듯 그나마 몇 시간은 잠을 잘 수 있다.


물론 새벽녘에 눈을 뜨는 것은 이제 내 일상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오늘 아침 창밖에는 비 예보와는 달리 흰 구름들이 뭉텅뭉텅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뒤로는 더운 바람이 거실 창문 사이로 밀려들어왔다.


10층 높이의 아파트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새벽부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들의 행렬과 종종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열고 있다. 예전의 나와도 조금 다르고, 세상의 보통과도 조금 어긋난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내 삶의 속도가 조금 늦을 뿐. 어쩌면 이 늦음 속에서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주하게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현관문을 나서자 집 안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제서야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만들어 간다.


야채주스를 갈고 통밀빵을 데워 두유 한 잔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작은 식탁 위의 소박한 식사가 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투병 이전의 루틴으로 돌아가 서재에 앉았다. 한 달 전쯤, 병원에서 읽으려고 요양병원으로 주문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 류시화가 엮은 인도의 우화집.


짧고 간결한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울림은 병원 생활의 힘든 순간마다 내게 기댈 자리를 내어주었다.


입원 중에는 다 읽지 못하고 퇴원길에 남겨둔 채였는데, 지난 일주일 동안 조금씩 시간을 내어 읽어왔고 오늘 오전, 드디어 그 마지막 장을 넘겼다.


책을 덮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 꼭 약이나 치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글 속에도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시인 류시화는 유독 병원과 인연이 깊은 작가다.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해 2월,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져 약 한 달간 병원에 함께 머물렀을 때였다.


그때 딸이 내게 건넸던 책이 바로 그의 시집 <마음챙김의 시>였다. “힘들고 지칠 때 읽어보세요”라는 딸의 조심스러운 권유와 함께였다.


병실 한쪽에서 읽었던 그 시들은 당시의 막막함 속에서 내 마음을 잠시나마 붙들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또 다른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다시 깨닫는다.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약과도 같다는 사실을.


쓰는 사람의 손끝에서,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치유는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다.


잠시 책을 덮어두고 내면이라는 단어에 대해 글로 옮겨 적었다. 생각을 적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입안의 통증도, 갑작스런 현기증도 사라져버렸다. 잠시나마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간 듯한 그 짧은 체험은 인체가 가진 기묘한 회복의 신비를 느끼게 했다.


점심은 된장국을 끓이기로 했다. 어제 아내가 퇴근길에 호박, 양파, 버섯, 감자 등을 사 오며 자기가 끓여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재료만 준비해두면 내가 하겠다고 했다.


물이 끓자 된장을 옅게 풀고 감자를 먼저 넣은 뒤, 잠시 후 나머지 채소들을 차례로 넣었다. 마지막에 배추잎을 살짝 넣어 마무리하자 순한 향이 주방에 번졌다.


염도를 측정해 보니 0.5. 고작 된장 조금에 야채만 넣었을 뿐인데도 수치가 생각보다 높게 나왔다. 그 순간, 그동안 내가 얼마나 짠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어왔는지.


투병 중이 아니었다면 아마 고춧가루와 소금, 그리고 차돌박이나 해산물까지 넣어 진한 국물 맛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끓였다면 염도 0.5라는 수치는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 음식 앞에서, 내 몸 앞에서. 단순한 수치 하나가 내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오늘 된장국 앞에서 나는 확인했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이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기준으로 살아가는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투병 이후 나에게 주어진 길이고, 동시에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이기도 하다.


점심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서평을 작성했다. 병원에서 읽으며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었던 짧은 문장을 손끝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옮겨 적었다.


그 과정은 마치 과거와 현재의 내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시간이었다. 병원에서의 감정과 지금 집에서 느끼는 감정이 전혀 다른 결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같은 글이지만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집중을 이어가다 보니, 몸은 금세 피곤해졌다. 어느새 졸음이 밀려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짧은 낮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오후의 햇살이 거실을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저녁은 오늘부터 아내와 따로 먹기로 했다.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즐겁기는커녕 요즘 내게는 점점 고통에 가까워졌다.


모든 음식이 동일한 맛으로 느껴지고, 맛이란 개념이 사라진 자리에 ‘그저 삼켜야 한다’는 의무만 남았다.

식탁 위에서 웃음기 없이 숟가락을 옮기는 내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아내 역시 편할 리 없었다.


결국 딸에게 다시 부탁했다. 내가 먼저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는 퇴근한 딸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으로 하자고.


그렇게 나는 오후에 끓여둔 된장국과 남은 반찬으로 먼저 식사를 마쳤다.

뒤이어 아내는 딸과 함께 식탁에 앉아 따로 저녁을 마무리했다.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작은 거리두기였지만, 동시에 그만큼 서로를 배려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투병 이후의 삶은 이렇게 조금씩 변형된 일상 속에서 이어져 간다. 때로는 서운하지만 그 서운함마저 서로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또 하나의 노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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