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9일차의 기록
25년 5월 30일 편도암 확진. 항암 6회, 방사선 치료 30회 완료
메말라 갈라진 입안의 염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마른기침에 물을 들이켜고, 또다시 화장실을 오가는 일이 루틴처럼 몸에 새겨졌다.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에 몸을 일으켜 세웠고,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서재 창가로 아침 노을이 스며들었다.
피곤함 속에서도 위로가 된 건, 변비가 해결되었다는 것과 아주 조금이지만 미각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먹은 삶은 계란에서, 통밀빵에 바른 천연 잼에서 아주 희미한 맛이 느껴졌다. 목을 넘기는 순간, 단맛이 5%쯤 스치듯 지나갔다.
그 작은 변화가 내 하루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는 듯했다. 병든 몸이 보내오는 미약한 회복의 신호에 감사하며 오늘을 시작했다.
치료를 마치고 내려온 두 번째 주말, 아내와 집에서 아무 약속도 없는 채 휴식을 취했다. 간밤의 부족했던 잠은 두 차례 낮잠으로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었다.
해가 저물 즈음,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아파트 인근 거리를 걸었다. 산책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짧은 걸음이었지만, 지난 6월 30일 요양병원으로 향한 뒤 정확히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길이었다.
놀라운 건,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초저녁의 무더운 여름 풍경은 그대로였고, 달라진 건 나뿐이었다.
다행히 그 변화는 절망이 아닌 긍정의 결과였다. 두 달 전 마지막 산책에서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의심했던 내가, 이제 아내와 웃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기적처럼 다가왔다.
목 속을 점령하던 검은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희망이 남았다.
줄어든 체중과 굳은 몸은 잠깐의 걸음에도 금세 피로를 알렸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쉬어 가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산책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반찬 몇 가지와 간식, 그리고 주스용 채소와 과일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두 달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장면이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 채널과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우연히 눈을 붙든 프로그램이 있었다.
내가 즐겨보는 “벌거벗은 세계사”, 오늘의 주제는 뜻밖에도 “제 165회 -인류가 가장 정복하고 싶은 난치병, 암의 역사”였다.
출처 및 자료 제공: 벌거벗은 세계사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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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고 잠시 왔던 내 몸속의 “암”이라는 단어에 본능처럼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류가 암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전, 수천 년 전부터였다.
발암물질을 규명하기 위해 자행되었던 엽기적인 실험들, 그리고 조금씩 그 정체를 파악하고 정복하려 했던 인류의 오랜 노력이 프로그램 안에 펼쳐졌다.
집중해서 보던 나는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어쩌면 가장 허망하지만 가장 솔직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가진 존스홉킨스 대학이 2015년에 발표한 암의 발생 원인.
정답은, 놀랍게도 “운”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TV 속 패널들처럼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물론 흡연, 음주, 각종 발암물질의 노출이 위험을 높이긴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흡연자가 암에 걸리는 것도, 모든 금연자가 암을 피해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같은 암이라 불려도, 환자 100명의 세포는 모두 다르다는 말처럼 암은 결국 인간 안에 늘 존재하는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계기로 그것이 깨어나는지, 인류는 아직 그 답을 알지 못할 뿐이다.
나는 순간, 두 달 전 병실의 침대 위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인가?” 그 질문에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시간을 건너왔지만, 오늘에서야 조금은 명확해졌다.
암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의 이름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름만 같을 뿐 모두 다른 종류의 암세포이다.
결국 치료 방법도 재발을 막는 방법도 완치를 경험한 누군가의 방식을 그대로 좇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나의 일상을 돌아보고 내 삶의 패턴을 스스로 다시 짜는 것이다.
운명이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적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하루의 습관과 태도는 내 손에 있다.
암을 이겨낸다는 건 단순히 몸을 회복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었다.
암은 현대 의학으로도 완벽히 정복할 수 없는 병이고, 설령 완치라는 진단을 받았다 해도 사람들은 평생을 이전과는 다른 생활 습관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누군가 암을 무엇을 먹어서, 어떤 방법으로 이겨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의 암세포에 우연히 맞아떨어진 방식일 뿐이다.
내게도 언젠가 찾아온 지지리도 운 나쁜 손님, 이 암을 돌려보내는 길은 결국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나만의 몸, 나만의 삶 속에만 숨어 있는 것이니까.
나는 지난 30년 동안 주 7일 과도한 음주를 해왔고, 음주 다음날에는 해장이라는 명분으로 자극적인 국물들로 목을 혹사 시켰다.
또한 약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 동안 공사장과 각종 공장의 비산 먼지를 마스크 하나 없이 뒤집어쓰며 지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결국 이런 것들이 겹겹이 쌓여, 평생 비흡연자였던 내 목에 편도암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것이다. 원인을 똑바로 마주하고 나니, 해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처럼 살아야 하나, 주말 농장을 빌려 모든 음식을 직접 키워 먹어야 하나, 아니면 좋아하는 음식들을 평생 포기해야 하나.
그동안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사실은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오늘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이제부터 내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라, 다시 쓰는 것이다.
무모했던 습관들을 고치고, 작은 일상의 질서를 세우며,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루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암을 이겨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결국 암을 이겨낸다는 건, 어쩌면 완치라는 기적을 얻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특별한 식단이나 극단적인 방식이 아닌, 무심히 흘려보내던 내 일상의 습관들을 조금씩 바로잡는 것, 그것이 내가 다시 살아낼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