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8일차의 기록
어제 하루 종일 심한 변비로 고생하다 저녁에 약국에서 사온 변비약의 힘을 빌려 새벽녘에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시원함과 동시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언젠가 농담처럼 “인생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된다”라고 말하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그 단순한 말이 오늘에 와서는 얼마나 절실한 진리인지 새삼 깨닫는다.
건강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던 일상이, 병을 겪고 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상은 언제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그 당연함 속에 얼마나 큰 은혜가 숨어 있었는지 이제야 눈을 뜨게 된다.
속이 가벼워진 덕분에 새벽 햇살이 동쪽 하늘을 가르며 거실 안으로 스며드는 순간, 나도 몸을 일으켜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가만히 호흡을 세는 동안, 내 몸은 분명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조금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분주한 아침을 마치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오후 2시, 삼성병원에서 CT 촬영이 있는 날.
진단은 9월 10일로 예정되어 있지만, 오늘 찍는 사진 속에서 내 양쪽 목에 자리했던 암세포가 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치유 과정이 결정될 것이다.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대구의 8월 마지막 더위는 여전히 기세가 등등했다. 태양은 하늘을 거칠게 쪼이며 강한 열기를 뿜어냈다.
나는 그 뜨거운 공기를 피해 동대구역으로 향했고, 수서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달리는 창밖 풍경 속에서 내 마음은 아직 불안했지만, 동시에 ‘이 길 끝에는 새로운 계절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작은 희망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수서역에 도착해 삼성병원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도 버스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두 달 전, 처음 이 버스를 탔던 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는 두려움과 불안이 뒤섞여 낯선 길을 들어서는 마음이었다면, 오늘은 긴 치료를 끝내고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라 어쩐지 마음속의 결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무겁지만, 그 속에 작은 희망이 자리한 듯했다. 암병원에 들어서자 안은 여전히 분주했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휠체어를 밀고 가는 보호자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의료진.
그 모든 풍경이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내 일상의 일부였는데, 오늘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같은 공간인데도 마음의 위치가 달라지니 풍경도 전혀 달라 보였다.
별관에서 채혈을 마치고 CT실 앞에서 대기표를 뽑았다. 조영제를 맞기 위해 팔에 바늘이 꽂히는 순간, 몸은 이미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곧 이름이 불리고 커다란 방사선 기계 위에 누웠다. 조영제가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
뜨거운 액체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빠르게 스며드는 순간, 마치 내 몸속 깊은 곳까지 환히 비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사는 10분 남짓 짧게 끝났다. 이후 혹시 모를 부작용 확인을 위해 대기실에 앉아 30분을 더 기다렸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이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의 모든 과정은 이토록 단순했지만, 내 마음은 그 단순한 과정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수서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 출발까지는 아직 40분이 남아 있었다. 기다림은 이제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곳곳에 스며든 일상이 된 듯하다.
기차역 안 식당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각은 여전히 사라진 지 오래지만, 후각과 시각은 또렷이 살아 있어 배고픔을 자극했다.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해야 해서 점심을 거른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비록 아무 맛도 느낄 수는 없지만, 최근 ‘삼시세끼’라는 생활의 리듬이 내 몸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았다. 그것이 이제는 새로운 루틴처럼 자리 잡아 간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려주었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아무리 냄새가 식욕을 자극해도, 결국 내게는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유혹을 애써 뿌리치고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허기조차도 나에게는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그저 힘겨운 공복으로만 여겼을 텐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살아 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의 어스름한 노을이 광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빛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준비해둔 따뜻한 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전히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죽 속에는 여전히 내게 힘을 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내와 마주 앉아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과 앞으로 남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마음속 깊은 불안과 기대를 조심스레 꺼내놓을 수 있었고, 아내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대화 끝에 내 속은 한결 가벼워졌고, 마음 역시 조금은 단단해졌다. 그렇게 편안해진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