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17일차의 기록
퇴원 후 맞는 세번째 주말.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해가 중천에 걸린 시간쯤이면 각자의 방에서 비몽사몽 눈을 비비고 나온 두 하이에나가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셰프 같은 존재였다. 주방에 서서 뚝딱 만들어내던 음식들은 대단할 것도 없었지만 그들에겐 늘 기다려지는 주말의 풍경이었다.
이제는 그 장면을 더 이상 재현할 수 없다. 내 손끝에서 나가던 냄새와 소리, 그 사소한 정성들이 지금은 멈춘 채로 남아 있다.
오늘 아침도 이미 통밀빵과 삶은 계란, 그리고 야채 주스로 간단히 끼니를 마친 내게서 더 이상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아내와 막내도 알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냉장고 속 반찬들을 꺼내 각자의 방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예전 같으면 주말 전에 장을 보고 막내가 좋아하는 반찬들과 아내가 즐겨 먹는 음식 하나쯤은 직접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때론 김밥을 말고 김치볶음밥을 볶고 떡만두라면을 끓이는 그 작은 수고가 내겐 가족을 위한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사랑의 표현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 주방에 서지 못한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손이 닿지 않는 현실 앞에서 괜스레 속이 상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언젠가 다시 조리대 앞에 설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그때가 오면 오늘의 아쉬움은 오래도록 기다려온 기쁨의 순간을 더 크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미각이었다. 아직 매운 음식은 엄두도 못 내지만, 오늘 점심엔 김치를 물에 헹궈 국에 말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그 미묘한 간의 맛이 혀끝에 닿는 순간, 기적처럼 행복이 스며들었다. 별것 아닌데도 그저 감사했다. ‘이제 뭐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마저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주말 오후 나름의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조심스레 외식을 제안했다.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아내는 “괜찮겠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맵지 않고 국물이 있는 메뉴라면 괜찮을 거라며 오히려 막내도 좋아할 만한 음식으로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
병원밥과 죽으로 채워지던 지난 시간 속에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외식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다시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 같았다.
그렇게 67일 만에 아내와 막내와 함께 인근 식당가로 향했다. 선택한 곳은 동네의 오래된 보쌈집.
특별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앞에 두고 셋이 함께 웃으며 앉아 있는 풍경은 오히려 낯설게 다가왔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단조롭게 흘러가던 날들 속에서 그 장면은 오래 기다려온 작은 축제 같았다.
다행히 보쌈고기는 목을 넘기기에 무리가 없었다. 고유의 맛을 온전히 다 느낄 수는 없었지만 고무 같던 지난날의 식감에서 이제는 절반쯤은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식당 사장님이 김치를 씻어 내어주어 보쌈 한 점에 김치를 곁들이는 호사까지 누릴 수 있었다.
밑반찬 대부분은 그저 눈으로만 먹었지만 고기와 콩나물국, 그리고 몇 가지 채소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살기 위해 억지로 삼키던 음식이 다시금 맛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 아닐까.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되찾는 순간의 감각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된다. 오늘의 식탁은 그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