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7.오늘 만남의 살아있음을 알게해주는 선물이었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18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토요일 오후, 강원도 춘천에 사는 처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퇴원 소식을 들은 뒤 꼭 얼굴을 보러 내려가겠다는 말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동안에도 몇 차례나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치료 직후의 초라해진 모습을 차마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형은 아내보다 세 살이 많다. 내가 열여덟 살에 아내와 만나던 시절부터 내 곁을 지켜본 사람, 말하자면 내게 처형은 단순히 ‘아내의 언니’라기보다 친누나 같은 존재였다.


성격도 아내와는 극명히 달라, 아내가 새침하고 조심스러운 쪽이라면 처형은 일찍 세상으로 뛰어들어 삶을 책임져야 했던 단단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업전선에 서고 결혼도 미뤄가며 오빠와 동생 대신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커리어 우먼.


인생은 늘 불공평하다고 했던가. 그녀의 삶 역시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이제야 조금은 자기 몫의 시간을 살아내는 중이다.


게다가 10년 전, 건강검진 도중 발견된 유방암 인자로 방사선 치료를 여섯 차례 받고 완치 판정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나를 향한 걱정도 남달랐다.


어린 우리 부부를 대하던 태도도 남들과는 달랐다. 다른 이들이 소꿉장난 같다며 가볍게 여길 때, 처형은 늘 나를 가장으로 인정해주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 셋 키우며 고생한다며 또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던 최고의 서포터즈였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고마운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내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피할 수는 없는 일. 누군가와 첫 대면을 한다면 차라리 처형이 가장 낫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이번만큼은 거절하지 않았다.


강원도에서 출발해 일요일 아침 일찍 내려온 처형은 결국, 오후 점심시간 즈음 되어 우리 집에 도착했다.


현관에 들어서며 수척해진 나를 본 처형은 말 한마디 건네기도 전에 울컥 눈물을 쏟았다. “고생 많았다”는 말과 함께 짧은 포옹.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억눌러 웃는 얼굴로 처형 부부를 맞이했다. 웃음으로 감싸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예상대로 처형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거실에 내려놓은 커다란 아이스박스에서 하나둘 꺼내는 것은 정성 그대로의 삶이었다.


고추가루 대신 소금조차 아끼며 만든 두부조림, 고사리볶음, 오이지, 감자채볶음, 물김치… 매운 음식을 못 먹는 나를 위해 따로 맞춘 저염식 반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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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반찬에 양념을 더해 가족들을 위한 버전까지 준비해온 세심함. 마지막으로는 강원도에서 일부러 주문한 소갈비와 직접 만든 양념장까지.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음식들 앞에서 처형은 “비싼 거 좀 해오고 싶었는데 네가 맛을 못 느낀다니까 이 정도밖에…”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무심한 말 속에서 더 큰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외식은 취소하고, 처형이 가져온 음식들로 집에서 바로 식사를 준비했다. 아내는 급히 마트로 달려가 야채와 쌈을 챙겨왔고, 딸도 연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왔다.


오랜만에 우리 집 거실이 북적거렸다. 그 북적임은 병으로 잠잠해졌던 집 안에 다시 돌아온 삶의 기척 같았다.


술을 좋아하는 처형과 나는 평소 같았으면 낮술을 함께하며 긴 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운전을 해야 하는 형님, 금주 중인 나를 제외하고 아내와 딸, 그리고 처형이 가볍게 반주를 곁들였다. 술기운이 오르자 처형은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옛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35년. 늘 밝고 명랑하던 청년이었던 나는 병으로 수척한 모습.


또한 한때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던 커리어우먼이던 처형은 이제 세월의 무게를 이마에 새겨넣은 채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청춘을 불태우던 시절은 이미 한참이나 지나갔다. 우리는 이제 몇 잔의 술에도 금세 취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해졌다. 세월은 분명 우리를 늙게 만들었고, 몸을 무겁게 했지만 동시에 우리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힘들었던 순간을 견뎌내며 쌓인 기억들이 우리를 여전히 웃게 하고, 울게 하고, 서로를 붙들게 했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앗아간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제야 안다. 시간이 가져가는 만큼 반드시 남겨주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오늘 식탁 위에 가득 놓인 반찬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형이 살아온 삶의 무게와 정성, 그리고 나를 향한 사랑의 증거였다.


두부조림 한 조각에도 담백한 물김치 한 숟가락에도 그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함께 나누며 웃고 떠드는 이 소소한 장면이야말로 내가 다시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처형과 나는 서로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우리, 눈가의 주름이 더 깊어진 우리, 그러나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버티어낸 우리.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기적 같았다.


병은 내 몸을 약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관계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누구와 함께할 때 내가 가장 나다운지를 알게 해주었고 어떤 인연이 내 삶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늙어간다 해도 오늘처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결국 삶이란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병 앞에서도, 시간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마주 앉아 숟가락을 부딪히며 웃을 수 있는 힘.


그 힘은 의학이 주는 약에서 오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만 온다.


그 어떤 외식보다 풍성했고, 세상 그 어떤 소고기보다 맛있는 음식들로 배부른 점심을 먹고 치운 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웃음과 눈물이 오가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어느새 시계는 오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강원도로 돌아가야 하는 처형 내외를 보내야만 했다.


낮술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처형을 조심스레 깨우며 나는 망설임 끝에 “저녁은 먹고 가라 아니면 하루 자고 가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나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이유, 그리고 무엇보다 제부의 몸 상태를 먼저 생각하는 처형의 눈빛이 그 말에 답이 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간단히 먹고 갈게.”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 두 사람을 보며, 짧지만 묵직한 아쉬움이 가슴 한켠을 채웠다.


현관 앞에서 다시 나눈 짧은 포옹. 그 포옹 속에는 수십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문이 닫히고 집안이 조용해지자 비로소 하루의 온기가 스르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온기는 내 안에 오래 머물 것 같았다.


오늘의 만남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