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3일차의 기록
잠드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게 지난 며칠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결과인지, 아니면 서서히 회복의 조짐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꿈을 꾸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중간에 깨는 순간이나 눈을 뜨는 시각은 여전히 같지만, 예전보다 입면의 속도가 빨라졌다.
깨어난 후에도 곧바로 다시 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덕분에 새벽녘 몸을 일으키는 일이 훨씬 덜 피곤해졌다.
어스름한 새벽, 책 한 권을 펼쳐 읽는 시간이 이제는 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1년 전 나를 깊이 흔들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고,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목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짧은 글을 남겼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두 시간 남짓 이어지는 간추린 독서와 짧은 생각을 기록하는 이 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병이 던져준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이 새벽의 습관만큼은 내 의지로 만들어낸 작은 성취다. 그래서인지 그 시간을 이어가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 인천에 계신 어머니가 경미한 차량사고를 당하셨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과실도 상대방의 몫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그 차였다.
내 이름으로 등록된 2009년에 생애 처음으로 큰맘 먹고 산 새 차. 회사에서 차량을 지원받으면서 어머니께 드리게 되었고, 그 후로는 어머니의 차가 되었다.
16년이 된 SUV였다. 총 주행거리 8만 킬로. 놀랍게도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묵묵히 달려준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고 뒤 공업사에서는 수리비가 차량 잔존가를 훌쩍 뛰어넘는다며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상대 보험사는 220만 원만 지급할 수 있다고 했고 공업사 견적은 800만 원, 게다가 부품도 구하기 어려워 아예 수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어제, 차량을 폐차하기로 최종 합의를 했다. 오늘은 폐차 동의서를 작성해 보험사에 넘겼다.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한동안 내가 직접 몰지는 않았지만 그 차는 내 인생의 첫 차였다.
한때는 온 가족을 태우고 전국을 누볐고 캠핑에 빠져 있던 시절에는 새해 일출을 보겠다고 전기도 없는 겨울 바닷가에서 나와 아내의 밤을 따뜻하게 지켜주던 든든한 동반자였다.
무려 10년 가까이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그 세월 동안 내 안전과 가족의 안전을 맡아준 차였다. 이후에는 어머니의 발이 되어 주었으니 단순한 물건이라기보다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오늘 오전, 어머니가 공업사에 들러 차 안에 남은 짐을 정리하시며 내게 전화를 주셨다.
“사람도 아닌데, 정든 걸 보내려니 서운하다. 그냥 우리가 수리비를 부담해서라도 고쳐 쓰면 안 되겠니?”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맴돌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사고 직전까지도 멀쩡했고, 외관만 봐서는 수리비가 그렇게까지 많이 들 것 같지 않았으니까.
단순히 차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한 세월과 정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지인을 통해 여러 공업사에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수리를 해도 이제는 여기저기 계속 고장이 날 겁니다. 폐차를 권합니다.” 결국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을 평생 곁에 둘 수는 없잖아요. 결국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오잖아요. 이 차는 그동안 우리를 지켜주고 자기 몫을 다했으니 이제는 고마운 마음으로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고는 차 안의 짐을 정리하고 공업사를 나오셨다.
그 순간, 떠나간 것은 단순히 낡은 SUV 한 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과 기억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그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게 되었다.
떠나보낸다는 의미는 단지 하나의 물건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추억과 사랑, 감정을 함께 보내는 행위였다.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전해진 서운함은, 사실 철로 된 자동차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차와 함께했던 시간, 가족을 태우고 달리던 순간, 아침저녁으로 집 앞 골목을 나서며 의지하던 익숙한 풍경 같은 것들을 잃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내 명의로 된 첫 차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젊은 날의 흔적과 웃음소리 그리고 함께 지켜낸 안전과 평온을 떠나보낸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언젠가 이별의 순간은 찾아온다. 중요한 건 그때 남겨진 자리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품는가다. 고마움으로 기억할 것인지 아쉬움으로만 붙잡을 것인지는 결국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오늘 나는 차를 떠나보내면서 고마움이라는 이름으로 이별을 택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나 역시 떠나는 날이 오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은 어떤 이름으로 그 이별을 받아들일까.
아쉬움일까, 눈물일까, 아니면 오늘 내가 선택한 것처럼 고마움일까.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다. 사람, 시간, 관계, 물건등 그 모든 순간마다 남는 건 결국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의 문제다.
오늘 떠난 차처럼 언젠가 나라는 존재가 떠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때 나를 아는 이들이 나를 고통이나 아쉬움만으로 기억하기보다 함께한 순간들에 대한 감사로 이별을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고마워하려 한다. 나를 지켜주는 가족에게, 여전히 함께 있어주는 벗들에게, 그리고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작은 루틴 하나하나에.
결국 살아간다는 건 끝내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 또 다짐한다.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 순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보낼 때, 그들의 마음속에 남을 이름이 슬픔이 아니라 고마움이길 바란다고.
그 고마움 하나로 나의 이야기가 끝이 아닌 따뜻한 기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16년의 추억을 보내며 아쉬움도 컸지만, 그만큼 내 내마음은 덜 아프고, 또 한층 단단해져 오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