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 오늘은 치유였고,
나를 살게 하는 이유였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6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지난 몇 주간 나를 잠식하던 불면의 새벽들은 길고 지독한 어둠만을 남겼다. 깊은 밤, 얇은 베개 위에 누운 채 끝내 잠들지 못하고 눈을 뜬 순간들.


그것은 단순한 피곤을 넘어 마음 한쪽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이제는 이전과 달리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회복의 작은 신호처럼 다가왔다.


그 하나만으로도 감사했고 몸이 전보다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그 안도감을 품은 채 거실의 창가에서 짧은 명상을 하고 서재로 향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바람은 서늘했지만, 오히려 내 안의 무거운 공기를 조금 걷어내 주는 듯했다.


책상에 안자 한권의 책을 꺼내든 새벽의 루틴도 이젠 즐거운 시간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 단순한 반복의 습관이 내 삶을 다시 끌어올리는 힘처럼 느껴졌다.


지난주 어머니의 차량 사고로 16년의 추억이 깃든 첫차를 떠나보냈다. 긴 세월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었던 차가 사라지고 나니 곧바로 어머니의 새로운 차량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가 눈앞에 놓였다.


소형차나 경차로 중고차를 사야 할지 내가 인천으로 올라가 함께 알아봐야 할지, 아니면 어머니께 대구로 내려오시라 해서 집 근처 중고차 매장에서 해결해야 할지.


보험 경력 문제와 명의 문제까지 머릿속은 이미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걱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일을 붙잡고 나는 어느새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다리를 반쯤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 모든 고민이 단번에 풀려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답이 찾아온 것이다. 포항에서 근무 중인 둘째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2년 전 백령도 근무 시절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해서 작은 소형 중고차를 사서 보내준 적이 있었는데 올 초 포항으로 발령이 나면서 관사를 배정받아 차를 거의 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차를 할머니께 드리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순간 미안함과 대견스러움이 뒤섞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찮다고 차가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지 않겠냐고 되물었지만 아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은 차가 필요 없어요. 나중에 필요해지면 제가 원하는 차를 사면 되죠.”


말끝에 담긴 진심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어머니는 처음에 극구 사양하셨다. 손주의 차를 빼앗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며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손자와 직접 통화를 하시고 다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신 끝에 결국 마음을 여셨다. 그렇게 오늘 저녁 포항에서 아들이 직접 차를 몰고 왔다.


퇴근 후 출발한 아들이 저녁 7시 반쯤 현관으로 들어섰다. 문틈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늠름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요즘 들어 눈물이 잦아졌다. 아픈 뒤로, 아니 나이를 더해 가면서부터 였을까.


작은 일에도 금세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먼저 앞서는 내 모습이 때로는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오늘이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이후 처음으로 마주하는 아들이었다. 퇴원한 지도 스무 날이 넘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몸속의 ‘암덩어리’를 없앤 뒤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에 감정은 더욱 벅찼다. 다행히 퇴원 직후보다 훨씬 나아진 내 상태를 보여줄 수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놓였다.


병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지난날과 달리 오늘은 조금은 당당하게 아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딸과 막내에게 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없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메뉴는 아들이 정했는데 뜻밖에도 “생선구이가 먹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딸이 급히 동네 인근의 생선구이 전문점을 찾아 예약했고 그렇게 우리는 모처럼 한자리에 앉았다.


돌이켜보니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저녁을 먹은 건 아들이 포항으로 발령 난 뒤 처음이었다.


늘 막내는 고3이라는 이유로 빠지고 각자의 일상은 바쁘게 흘러가며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 사실을 오늘 식탁 위에서 새삼 실감했다.


노릇하게 구워져 나온 생선의 향보다, 함께 앉아 젓가락을 부딪치며 웃는 가족의 소리가 더 따뜻했다.


병과 함께 살아내는 시간 속에서도 이런 순간은 선물처럼 불쑥 찾아왔다. 걱정으로 무거워지던 마음은 아들의 깊은 배려와 가족의 웃음으로 조금은 가벼워졌다.


피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지만 그 무게를 함께 나누어 들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 오늘 나는 그 단순한 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오늘 저녁은 그 자체로 치유였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