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7일차의 기록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저녁을 먹고 돌아온 집 안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온기가 가득 차 있었다.
식탁에서 흩어진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들과 나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그는 군 생활의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투병 생활의 조각들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보낸 이야기였지만 결국은 같은 무게의 하루를 살아낸 기록들이었다.
내일이면 다시 포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들을 붙잡고 밤새도록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아내가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 자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새벽까지 끝나지 않을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결국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누웠지만, 금세 깊은 잠이 찾아왔다. 그동안 잊고 있던 불면의 밤을 잠시 비켜간 듯 새벽의 두 번의 짧은 깨움 말고는 긴 호흡으로 잠을 채웠다.
조금 늦게 눈을 떴을 때 거실 창가로는 동쪽에서 서서히 밀려드는 햇살이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들이 서재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보고 혹시 방해될까 조심스레 책상위에서 노트북과 어제 덮어두었던 책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자존감수업>의 문장을 다시 꺼내 읽고 '비난'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 시키기 위해 힘을 주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을 열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아내와 막내가 현관을 나서고 집 안은 유난히 고요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습관에 관한 책을 다시 펼쳤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조심했고 아직 늦잠을 자고 있는 아들이 깰까 봐 오전 독서도 평소보다 일찍 덮었다.
운동까지 마치고 났는데 아들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잠시 통화하던 그는 부대에 일이 생겼다며 10시쯤 문을 열고 나섰다. 분명 휴가를 내고 왔는데 말이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휴가 중임에도 불구하고 상관의 전화를 받고 부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의 뒷모습은 얼마 전까지 내 삶을 떠받치던 장면과 겹쳐졌다.
나 또한 직장에 있을 때는 직원들의 휴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늘 업무가 우선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사적인 시간쯤은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렸다.
오늘 아들의 급한 발걸음을 보며 그 지워진 자리의 무게가 이제야 선명히 보였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고로 직장이라는 곳에서 살아왔는지 그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한쪽에는 부끄러움이 다른 쪽에는 이제라도 깨닫게 된 다행스러움이 있었다. 내가 흘려보낸 시간의 상처를 아들이 다시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준비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시원한 음식을 찾던 그는 밀면집을 제안했고 함께 자리해 허기를 달랬다.
식사를 마치고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아들을 배웅하며 나는 또다시 잔소리 같은 말을 쏟아냈다. 몸 조심해라,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오래전 부모님이 내게 반복하던 말이 이제는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짧은 인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결코 짧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아들이 가져온 차가 눈에 들어왔다. 내일 대전 현충원에서 어머니를 뵐 때 전해드리기로 했는데 그 전에 점검을 해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인근 정비소를 찾았더니 정비사의 첫마디가 의외였다.
“차 하부가 많이 부식됐습니다. 혹시 섬에서 운행한 차량인가요?”
나는 아들이 백령도에서 2년 가까이 사용했던 차라고 설명했다. 정비사는 부품 교체가 불가피하다며 수리에 약 3일은 걸릴 거라고 했다.
내일 바로 어머니께 전해드려야 하는 일정은 결국 무산됐다. 수리를 맡길 수 없으니 차를 다시 집으로 가져와 세워두었다.
인천에 있는 어머니가 아시는 공장에서 수리를 받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작은 계획 하나가 어긋나는 순간 삶은 늘 이렇게 의도치 않은 변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내일 현충원에서 뵐 어머니와의 만남만은 계획대로 이어지길 바라며 차 내부를 정리했다.
지난 5월 마지막으로 이발을 한 뒤, 투병 생활을 거치며 4개월 동안 거울 속 내 모습은 점점 낯설어졌다.
흰머리가 가득 자라 마치 백발이 된 사람처럼 보였고, 그것이 내 나이를 훌쩍 앞당겨버린 듯한 기분을 주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지금 독한 염색약을 쓸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고 외부 약속조차 없는 생활 속에서 굳이 머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제 아내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내일 어머님을 뵐 텐데 이 모습이면 더 걱정하실 거예요.” 그 말이 마음을 찔렀다. 정작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어머니 앞에 서는 내 모습은 단순히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색이 드러난 자식의 얼굴은 부모에겐 가장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인근 미용실로 향했다. 가위질에 맞춰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단순한 모발이 아니라 지난 4개월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무겁게 얹혀 있던 시간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고, 거울 속 낯선 모습이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일 하나가 다시 삶을 가다듬는 일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병을 지나온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조금은 단단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어머니 앞에 흰머리 가득한 모습으로 서는 대신 정리된 모습으로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조금 편하게 했다. 투병의 흔적은 지울 수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나는 달라진다.
내일 현충원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더 이상 걱정만 드리는 아들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