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같은 하늘아래 우리셋은
서로를 지키고 있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27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열대야를 방불케 하는 9월 중순의 밤, 결국 에어컨을 켜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이제는 입면 장애와 불면의 고통이 사라져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른 새벽 다시 불어온 찬 공기에 에어컨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 아파트 빌딩숲 사이로 달과 해가 동시에 걸려 있는 풍경이 보였다. 잠시 숨을 고르듯 명상에 잠겼다.


책장에서 꺼낸 오래된 책 속에서 나는 성숙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고 그 단어에 기대어 짧은 생각을 적어두었다. 두 사람의 분주한 출근 준비가 끝나고 나 또한 외출 준비에 나섰다.


오늘은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동생을 어머니와 함께 만나고 차를 전달해드리는 일정이 있었다.


대전까지 약 180km. 익숙하지 않은 차를 몰고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했다. 고속도로는 평일이라 길은 한산했지만 1시간만 운전해도 다리에 힘이 빠지는 내 몸은 이전의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사히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신 어머니를 픽업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어머니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말씀하셨다. “살이 많이 빠졌네, 뺀 거야, 빠진 거야. 아님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사실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현충원에서 동생을 만나는 일을 즐거운 일이다. 해마다 명절과 현충일이면 방문하지만 서로 일정이 있어 같이 오는 일은 힘들어졌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반가움이나 설레임 보다 나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것은 아직 어머니께 내 몸의 상태를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코올 중독에 의처증으로 심한 남편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으셨고 작년 며느리의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마음이 크게 무너져 내리셨던 어머니였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못한 채 일상을 이어가고 계신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겪고 있는 병마의 사실을 전한다면 어머니는 아마 나보다 먼저 무너져버리실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하나뿐인 아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단순히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삶의 의지를 송두리째 잃어버리실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그 침묵이 어머니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언젠가 이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그 순간을 조금 더 늦추고 싶다. 오늘 하루 나는 그 무거운 침묵을 또다시 선택했다.


어머니에게 웃으며 “술을 끊었더니 살이 쭉쭉 빠지네요” 하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아침도 거르고 오신 어머니가 고른 점심 메뉴는 현충원 앞 해장국집이었다. 분명 어머니는 나를 위해 그곳을 선택하신 듯했다.


투병 전 매년 현충원에 오면 늘 방문하던 단골 메뉴였지만 지금의 나는 해장국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다행히 황태해장국이 있어 맑은 국물을 한 숟가락씩 떠 넣으며 티 나지 않게 그릇을 비웠다.


약간 돌아온 미각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그저 맛있게 다 먹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오랜만에 모자지간의 따뜻한 식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추석 명절에는 인천에 가지 못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나의 몸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회복 중인 몸과 고3 수험생 막내를 핑계 삼았다.


사실 그 핑계 뒤에는 내 마음의 무거움이 숨어 있었다. 어머니는 잠시 멈칫하시더니 곧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올해는 김장도 하지 않기로 했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내 식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담가둔 김치가 어머니집에도 우리집에도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김치를 잘 먹지 않게 된 아내 그리고 홀로 계셔 밥상마저 간소해진 어머니, 그래서 굳이 고생스러운 김장을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그 제안에도 선뜻 동의해주셨다. 예전 같으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셨을 텐데 그 역시 어머니가 조금은 지쳐 계시다는 뜻이리라.


식사를 마치고 현충원에 도착한 뒤 어머니는 동생 앞에 간단한 음식과 맥주 한 캔을 놓고 조용히 기도를 올리셨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없이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동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있는 나와 여전히 삶을 붙잡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속에 오늘 하루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현충원에 오시면 최소 한 시간, 때로는 몇 시간을 동생과 대화를 나누듯 기도를 하신다. 나는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대구로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충분히 마음을 나누고 아직 밝을 때 길을 나서시라고.


낯선 차를 운전하시는 만큼 몇 번이고 조심하시라 당부한 뒤 현충원을 빠져나왔다.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현충원역에 내리니 지하철이 바로 이어졌다. 대전역까지 직통 40분 그리고 동대구로 향하는 기차.


오랜만의 장거리 운전, 낯선 도시의 지하철, 플랫폼의 기다림이 한꺼번에 쌓여 몸을 짓눌렀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로가 몰려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 앞에 내린 시간이 오후 다섯 시 반.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했다.


퇴근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저녁은 따로 준비하지 말고 근처에서 간단히 먹자고.


그렇게 우리는 집 앞 국밥집에서 함께 저녁을 해결했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조금은 풀리는 몸 옆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 아내의 존재가 주는 위안.


집에 돌아와 문을 닫는 순간 긴 하루가 비로소 끝났음을 실감했다. 오늘은 너무 무겁고 힘든 길이었지만, 그래도 견뎌낸 하루였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전히 나는 내일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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