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3.결과는 괜찮은데도 마음은
안 괜찮다고 말했다

by 마부자

한여름의 흔적이었던 열대야는 초가을 바람 앞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불면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물러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어둠은 여전히 칠흑 같은 빛으로 창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내 몸은 늘 그렇듯 같은 시간에 깨어났다.


바람은 어제보다 차갑게 스며들었고 나는 잠시 짧은 명상으로 그 바람을 온전히 받아내며 서재로 향했다.


평소보다 어두운 새벽이 낯설어 달력을 확인했더니 오늘이 추분이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말 그대로 세상은 잠시 균형의 지점을 통과하는 날이다.


요즘 계절은 변덕스럽고 날씨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24절기는 여전히 놀랍도록 맞아떨어진다.


수백 년의 관찰과 경험이 쌓여 완성된 그 지혜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험이 쌓여 문명이 되고 지금은 AI라는 이름으로 지능을 흉내 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기술조차 결국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산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과거를 무지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쌓아가는 이 시간들 역시 머지않아 과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무시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배워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늘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 말은 인간이 걸어온 길의 무게와 실수를 되새김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병 앞에서 서툴고 불안하게 흔들리던 나 역시 결국은 그 수많은 과거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균형의 의미, 과거와 현재를 잇는 힘,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나 자신.


이른 새벽 체감으로 알게 된 추분의 절기 속에서 난 생각했다. 낮과 밤이 같아지듯 나의 삶 또한 치유와 불안, 희망과 두려움이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이 균형은 잠시뿐일지라도 그 순간의 평형이 내게 주는 위로는 크다. 내가 여전히 살아 가고 있고 이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균형의 새벽에 꺼낸 한 권의 책은 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다시 새기게 했다. 오늘의 일기는 그 생각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평소보다 긴 시간을 ‘기록’이라는 단어에 붙잡혀 글을 남겼다. 이 또한 지금의 나에겐 살아 있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짧은 독서와 운동,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 추석 명절 선물을 보내기 위해 집 앞 우체국으로 향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과 능력을 감안해 마음을 담아 선물을 대신 보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꼭 같은 자리에 서는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로변 한쪽에서 나이 지긋한 상인이 화초와 화분을 잔뜩 늘어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우리 집 베란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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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정성껏 가꾸던 율마들이 이제는 하나둘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라도 돌봐야 했지만 식물을 키우는 일엔 영 소질이 없어 결국 손을 놓고 말았다.


상인에게 집 베란다의 화분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가져가서 잘 키워주실 수 있다면 무상으로 드리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가져가겠다고 했고, 다만 나에게 1층까지 내려다 놓으면 차에 실어 가겠노라 약속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는 처음 망설였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분양을 하는 것이니 자신보다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승낙을 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20여 개의 화분을 하나씩 엘리베이터에 실어 1층으로 옮겨 두었다. 그러나 잠시 뒤 도착한 상인은 갑자기 말을 바꿨다. 못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1시간 전에는 자신 있게 가져가겠다던 사람이 이제는 모르겠다고 돌아서는 모습. 황당함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지만 체력도 마음도 이미 바닥이었다. 항의할 기운조차 없었다.


결국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사정을 들은 직원들은 화분을 화단 앞에 내어두면 분명 주민들이 가져갈 것이라 조언했다.


그 말에 따라 화분을 옮겨 놓았고 직원들의 도움 덕분에 일은 정리되었다. 뜻밖에 텅 비어버린 베란다를 보며 허탈한 공기만 남았다.


애써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속에서는 여전히 그 상인의 무책임한 태도가 떠올라 씁쓸함이 가시지 않았다.


오후에 내려놓은 화분들을 다시 보러 갔을 때 이미 대부분이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나 있었다. 서너 개의, 조금은 시든 화분들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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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수년간 우리 집 베란다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던 식물들이었다. 아직 말라 죽지 않은, 생명을 간직한 아이들이었다.


아내가 오랫동안 정성으로 키워온 것들이었기에 내가 하려던 건 버림이 아니라 분양이었다. 누군가 더 잘 보살필 수 있는 이에게, 그 정성을 이어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내놓을까 고민하기도 했고 끝내 방법이 없다면 내가 다시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 버렸다. 내가 버린 것도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물론 대부분의 화분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 한켠이 쓰라린 건 지울 수 없었다.


함께한 추억과 시간이 한순간에 흩어져 버린 듯한 상실감이 오래 남았다. 베란다를 정리하면서 느낀 공허함은 단순히 공간의 비어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을 지워내는 일 같았고 아내가 심어 두었던 마음의 씨앗을 함께 내어놓은 것 같은 아픔이었다.


결과는 분명 괜찮은데도 마음은 끝내 안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비워낸 그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빈자리는 늘 허무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는 다시 새싹이 자라나고 또 다른 시간과 추억이 그 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오늘의 아쉬움은 그렇게 미래를 품은 작은 준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