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저마다 가진 무게를 견디는
방식이 다르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2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길고 지루했던 폭염과 열대야가 물러가자 가을 손님이 찾아왔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무심히 눈을 떴다.


마치 영원할 것처럼 머물던 여름이 사라지고, 차가운 바람은 어느새 빗물을 끌어와 대지를 적셨다. 새벽 베란다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 짧은 명상으로 아침을 열었다. 책상 위엔 다시 펼쳐든 <손자병법>.


오랜 세월을 견뎌온 문장 속에서 이번 주 마지막으로 붙잡힌 단어는 ‘방심’이었다. 나의 병을 불러온 것도 어쩌면 그렇게 오래 쌓아온 방심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글로 옮기며 오늘 하루를 조심히 시작했다.


긴 연휴의 첫날. 예전 같았으면 이 황금 같은 휴일을 어떻게 채울지 계획을 쏟아내며 아침부터 가족들을 들볶았을 것이다. 특히 늦잠을 즐기던 아내와는 휴일마다 사소한 말다툼을 했었다.


집에서 쉰다는 것은 ‘낭비’라고 믿었던 내 고집이 늘 원인이었다. 내게 휴식은 집 밖 어딘가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고, 아내에게는 집 안에서 온전히 늘어져 있는 시간도 충분히 의미 있는 휴식이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난 뒤 매일 글을 쓰고, 같은 루틴을 살아내면서 내 안의 시선이 서서히 바뀌었다.


무조건 부지런해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던 생각은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내가 말하는 휴식의 세계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 뒤로는 휴일마다 괜한 언성을 높일 일도 사라졌다.


지금 나는 자의가 아닌, 투병이라는 타의에 의한 휴식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제 내가 생각하는 휴식의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계획과 억지 의미로 만들어내는 시간이 아닌 몸과 마음이 잠시 멈추고 회복되는 그 순간이 바로 진짜 휴식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 치료의 부작용으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진 면역력과 쉽게 지쳐버리는 체력, 그리고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미각 때문에 얻게 된 깨달음이기도 하다.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강제로 주어진 배움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몸을 눕히고 소파에 앉아 쉬는 순간조차도 내겐 소중한 회복의 과정임을 안다. 지금 내게 휴식은 더 이상 게으름이나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내 몸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조건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무더웠던 폭염의 하늘을 씻어내듯 투병으로 인한 흐린 내 마음에도 투명한 바람을 들여놓는 고마운 빗방울처럼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늦은 오후. 나야 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엄연히 직장인인 아내와 수험생인 막내에게는 오늘이 길고 기다리던 연휴의 첫날이다.


늘어진 늦잠으로 하루를 열어버린 아내와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 늦게 잠든 막내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마치 하이에나처럼 방문을 열고 나온 막내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아내가 볼링이 하고 싶다고 했다. 빗길을 지나 볼링장으로 가는 길, 당연히 휴일이니 한산하리라 생각하고 들어선 볼링장 주차장은 뜻밖에도 차량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막상 안으로 들어서니 볼링장은 한적했고 주차장을 함께 쓰는 학원이 정상 수업을 해서 차량으로 가득했던 것이었다.


순간 누군가에게는 이번 긴 연휴가 황금 같은 선물일 테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버텨내야 하는 고단한 하루의 연장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속에서 저마다 전혀 다른 무게의 하루를 살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이 든다는 것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내 곁에 있는 막내를 생각하며 조금 더 깊어졌다. 연휴라 해도 고3 수험생에게는 단지 달력 위의 빨간 글씨일 뿐이다.


오히려 친구들이 쉬는 사이 자신은 더 앞서가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연휴가 더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있던 막내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스터디 까페로 향하는 막내의 모습을 보며 이 연휴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보다 나은 삶과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는 막내의 현실을 보며 머리속이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또 다른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휴 동안에도 공항을 지키는 이들,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게 문을 닫지 못하는 자영업자들.


누군가에게는 잠시 쉼을 위한 연휴가 누군가에게는 더 길고 벅찬 노동의 연속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문득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내 시선이 나만의 세계에서 조금씩 바깥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마다 안고 있는 무게가 다르고 각자 그 무게를 견디는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불평 대신 이해가 무심한 시선 대신 작은 존중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여유를 주는 단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빗속을 뚫고 걸어가야 하는 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비 자체가 아니라 그 빗줄기 아래에 선 사람의 사정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사정을 헤아리려는 마음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