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5일차의 기록
어제의 짧은 여행의 피곤함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의 여운 때문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고 그만큼 더 깊이 잠들 수 있었다.
눈 사이로 들어온 밝은 햇살에 놀라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전 7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늦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퇴원 이후 거의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던 내 몸이 이 시간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의 속도가 느껴졌다.
몸이 조금씩 자신의 리듬을 되찾고 있다는 작은 확신이었다.
오늘은 추석 명절의 아침이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말끔히 옷을 차려입고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할 시간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명절은 몇 해 전부터 ‘의례의 시간’이 아닌 ‘쉼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차례상 대신 간단한 식사와 인사 대신 안부의 전화를 대신한다. 겉으로는 단출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온도는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막내의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두 사람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부엌으로 나와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식탁에 혼자 앉아 두유 한잔과 삶은 계란 두개가 전부인 아침이지만 내겐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명절의 아침식사였다.
조용한 아침 식사를 하고 짧은 독서를 마친 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제일 먼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혼자 계신 어머니는 예전 같으면 새벽부터 오랜만에 올라온 아들 내외의 아침을 준비하셨겠지만 이제는 홀로 명절을 보내시게 되었다.
작년에는 아내의 건강 문제로 올해는 내 건강 문제로 직접 찾아뵙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서운함이나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으셨다. 그 너른 마음이 오히려 내게는 미안함으로 남았다.
전화를 끊고 처가에도 안부를 전했다. 내 건강 소식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은 오히려 내 안부를 먼저 물으며 명절 인사 대신 걱정의 말을 건넸다.
그런 따뜻한 말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내가 여전히 건강하던 시절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걱정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누군가의 걱정을 받는다는 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속에 내가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오늘 아침, 나는 그 마음의 온도를 천천히 되새기며 그렇게 또 하나의 명절을 조용히 맞이했다.
점심즈음 아내가 “그래도 명절이니까”라며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음식들을 하나둘 꺼냈다. 미리 사둔 전과 잡채, 그리고 마트에서 사 둔 갈비찜까지.
비록 차례상을 차리진 않았지만 우리의 식탁 위에는 정성과 기억이 함께 놓여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출한 한 끼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고 그 어떤 잔칫상보다 따뜻한 명절의 밥상이었다.
비오는 명절 오후, 아내와 함께 볼링장으로 향했다. 명절 연휴라 사람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볼링장 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공이 구르는 소리로 가득했고 곳곳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함께 즐기며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조부모의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볼링공을 굴리는 모습, 스트라이크 한 번에 온 가족이 일어나 박수를 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족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렇게 잠시 다른 이들의 행복 속에서 우리도 기분 좋은 온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볼링장을 나서니 시간은 애매했다.
저녁이라 하기엔 이르고 점심이라 하기엔 늦은 시각.아내와 나는 인근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도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차장은 만차였고 인근 도로변에 겨우 차를 세운 뒤 20분을 기다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커피와 브런치를 먹으며 서로에게 말했다. “이제 추석도 많이 달라졌네.”
명절이면 집안 어른들이 모여 앉아 전을 부치고 제사를 지내던 시절에서 이제는 가족끼리 소소한 외출을 즐기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날로 바뀌었다는 이야기.
누군가는 예전의 명절이 더 따뜻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지금의 명절이 더 평화롭게 느껴졌다. 가족이 함께 웃고, 부담 없이 쉬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날.
그것이면 충분히 명절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비 내리는 추석의 오후, 우리 가족의 명절은 더 이상 형식이 아니라 회복과 평온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감사한 하루였다.
아내와 달라진 가족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두다 문득 명절에 혼자 있을 딸이 생각났는지, 아내가 딸에게 전화를 했고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커피숍을 나와 딸의 집으로 향했고 픽업을 해서 집 인근의 식당으로 항했다. 해산물 전문점으로 간 우리에게 요즘 대하가 제철이라며 사장님이 생새우 회와 새우구이를 추천을 해주었다.
순간 어제 포항에서 한마리에 만원하던 보리새우 생각이 났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충분히 사주지 못한 미안했던 마음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듯 내게 생새우를 추천하는 사장님의 목소리는 천사처럼 들려왔다.
어제 비싸서 시키지 못해서 무너졌던 자존심과 딸에게 미안했던 아빠의 마음을 더해 충분한 양의 대하를 만족스럽게 주문을 했다. 그렇게 어제와는 또 다른 즐거운 추석명절을 축하하며 건배를 했다.
그때 딸이 조심스레 가방을 열더니 작게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저하고 동생이 아빠 추석 선물 준비했어요.”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웃으며 “뭘 이런 걸 다 했어”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포장을 풀어보니 스마트워치였다. 한때 고객을 만나는 영업 일을 하며 정장을 입는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시계는 나의 정체성 같은 물건이었다.
패션의 완성이랄까... 값비싼 브랜드는 아니어도 계절과 상황에 맞춰 바꿔 찰 정도로 시계를 좋아한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까 스마트워치보다는 전통적인 아날로그시계를 선호했다.
하지만 작년 아내의 건강이 나빠졌을 때, 아이들이 응급전화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워치를 선물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저 ‘건강한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기능’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올해, 내가 병을 겪으며 그 생각이 얼마나 단단한 오만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딸은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병원 대기실의 긴 시간 동안 내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도 이제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라는 딸의 말이 마음 깊숙이 박혔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계를 손목에 올려보는 그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그 안에는 걱정과 사랑, 그리고 함께 견뎌온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어제 포항에서의 스스로 계산을 하는 아들의 모습, 아빠의 투병을 지켜보며 필요할 것 같다며 무심히 준비한 딸의 마음
2025년의 추석은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화려한 음식도 북적이는 친척의 모임도 없었지만, 조용한 웃음과 서로를 향한 마음이 그 어느 명절보다 따뜻했다.
결국 올해의 추석은 아이들이 전해준 그 마음의 온기 속에서 가장 오래 남게 될 한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