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4일차의 기록
추석 연휴라는 느낌 때문일까. 가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바람이 새벽녁 창문을 통해 침실로 스며들었다.
한기를 느낄 정도로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추리며 시간을 확인후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몸을 일으켜 침실의 창문을 닫고 베란다로 향했다.
아직은 옅은 달빛이 하늘을 비추고 있는 어둠의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있을 일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 추석은 조금 특별했다. 올 초 백령도 근무를 마치고 육지로 복귀한 둘째 아들이 맞이하는 첫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포항에서 대구로 올라와 가족이 함께 연휴를 보내기로 일찍부터 약속을 잡았었다. 그러나 지난주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추석 당일 당직 근무가 잡혀 대구에 올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아쉬움이 밀려왔지 만 대신 우리가 포항으로 내려가기로 가족회의를 통해 일정을 변경했다.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 아내와 딸 그리고 막내와 함께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택했다. 다행히 귀성길의 막힘도 긴 정체도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이었다.
포항에 도착해 아들의 관사 앞에 멈춰 섰을 때 우리는 이미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다. 점심 식사는 죽도시장의 대게 전문점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시장 근처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은 만석이었다. 입구에서 빙빙 도는 차들의 행렬 속에서 잠시 체념할 무렵 마침 한 대의 차량이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운 좋게 차지했다. 이렇게 사소한 우연 하나에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죽도시장은 예전 주말마다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때는 주말에도 북적였지만 오늘은 명절 전날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세 배는 더 붐비는 느낌이었다.
불황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시장통의 소리, 사람들의 웃음, 수족관에서 튀는 물방울까지 모두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수족관 앞에서 대게를 고르며 가격을 물었다. 언제나 그렇듯 “싯가”라는 애매한 단어가 돌아왔다. 사장님이 권한 것은 1kg에 7만 원짜리와 8만 원짜리 두 종류.
결국 8만 원짜리 대게 4kg을 주문했다. 출발 전부터 딸이 꼭 먹고 싶다고 했던 생새우를 추가로 주문했는데 한 마리에 만 원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사실 새우를 많이 사고 싶었지만 마리당 만원이라는 점원의 말에 솔직히 그럴수가 없었다. 금액이 문제라기 보다 새우 한마리 만원은 도저히 예상못한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딸은 비싸다며 안 먹어도 된다는 표정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생새우는 날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를 제외하고 인당 한 마리씩 네 마리만 주문을 했다. 영 마음이 찜찜했지만 딸은 오늘은 대게로 승부를 걸자며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산낙지를 추가해서 총 40만원. 명절 한 끼 식사로는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식사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결제하려 카드를 꺼내는 순간, 둘째가 손을 내밀었다. “아빠, 이번엔 제가 낼게요.”
몇 년 전, 군에 입대하며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이 이제는 자신의 월급으로 부모에게 밥을 사는 나이가 되었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뿌듯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딸은 늘 가까이서 성장의 단계를 함께 지켜봤기에 변화가 익숙했지만 둘째 아들의 이런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러나 낯섦은 불편함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아련한 감정이었다.
죽도시장의 북적임 속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대게를 나누던 그 시간. 그것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지난 시간을 조용히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처럼 일상의 작은 자리에서 자식의 성장을 마주할 때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란 단어가 비로소 마음 깊이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가 올려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손을 뻗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게 껍질을 뜯었고 다리를 분리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진짜 맛있다!”는 말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도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식탁 위에서 웃음을 나누는 그 풍경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록 인당 한 마리뿐인 생새우였지만 역시 맛은 좋았다. 또한 산낙지의 씹히는 식감이 이어지며 연휴 첫날의 기분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게딱지 비빔밥이 식탁의 대미를 장식했다.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어느새 배가 가득 찼다. 포만감과 함께 시장을 빠져나오는 길,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걷는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먹는 즐거움이 주는 행복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함께 있음’이 주는 충만함이었다. 긴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흩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웃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그 것만으로도 이번 추석은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 명절이었다.
점심을 마친 뒤, 아들은 인근에 해상테마공원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바다 위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부드러웠다.
유난히 푸른 하늘과 잔잔한 바다가 겹쳐진 풍경 속에서 가족들은 오랜만에 여유로운 사진을 찍었다. 치료 이후로 카메라 앞에서 웃는 일이 많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웃는 얼굴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해변 산책을 마친 우리는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창가에 앉아 시원한 커피와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다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특별한 주제 없이 흘렀지만 그저 함께 웃고 듣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원래 계획은 포항에서 저녁까지 함께 먹고 대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탓에 네 사람 모두 저녁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일정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내일 새벽 일찍 당직 근무를 나가야 하는 아들의 컨디션을 고려한 결정이기도 했다.
해질 무렵, 다시 아들의 관사 앞으로 차를 돌렸다. 짧은 하루였지만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보낸 시간이 오래 남을 듯했다. 아들은 “다음엔 제가 올라갈게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몇 해 전 군에 입대하던 날, 광장에서 보냈던 그 포옹과는 달랐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포옹이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아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그 뒷모습이 어느새 작아지자 마음 한켠이 뻐근해졌다.
하지만 오늘 하루의 기억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임을 알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돌아오는 길의 도로는 한결 한산했다. 가족 모두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포항의 불빛과 바다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오래 기억될 하루가 또 하나 내 마음의 앨범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