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6일차의 기록
늦지 않은 시간에 잠을 청했고 문제없이 잠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잠을 깨웠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1시 40분.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불을 고쳐 덮고 몸을 돌려보아도 깊은 잠의 문은 닫힌 듯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다시 시계를 보니 2시 30분. 단 1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결국 체념하듯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잤던 낮잠이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재로 향해 스탠드를 켜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짧은 명상을 했다. 그 순간 남아 있던 졸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40분.
이번주부터 조금씩 읽어오던 책은 지난달에 출간된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시리즈 3편 <경량문명의 탄생>이었다. 세 번째 시리즈인 이번 책은 구매해 책꽂이에 꽂아둔 지 2주쯤 되었지만 아직 한 번도 펼치지 못했다.
전작 <호명사회>에서 느꼈던 그의 통찰과 분석의 깊이가 인상 깊어, 이번 책 역시 기대가 컸다.
잠을 설친 이 새벽의 고요함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잠들었지만 지금 나의 시간은 깨어 있었다.
병과 싸운 지난 몇 달의 시간 속에서 새벽은 늘 불안과 사유의 경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침대위에 뒤척이며 불안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
어차피 말똥해진 눈을 다시 감아도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뒤척이기보다는 사유의 시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제는 이렇게 어쩔 수 없이 깨어 있는 이 시간이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옅은 스탠드의 불빛과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통해 세상을 다시 배우게 만드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새벽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다시 살아 있다는 감각을 그리고 여전히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느끼고 있었다.
새벽의 고요한 어둠속에서 읽던 책을 덮고 나니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창가의 커튼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긴 시간 깨어 있었음에도 몸은 크게 피곤하지 않았다. 다만 목 안쪽의 건조함과 혀끝의 묘한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치료 후유증 중 하나인 입마름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았다. 30분 단위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심해지는 입마름으로 인해 이제 물통은 내게 필수품이 되었다.
때로는 잠시 침이 나오질 않아 숨을 참아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편함조차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기보다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는 동안 완벽한 편안함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전 같으면 이런 불편함을 이유로 짜증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을 겪고 난 지금 나는 그 불편함 속에서도 평화를 찾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그 숨 사이로 ‘괜찮다’는 말을 마음속에 반복한다.
몸의 불편함이 나를 제자리에 묶어두는 대신 나를 현재로 붙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괜찮다는 마음과는 달리 또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은 바로 ‘뒤처짐’이었다.
송길영 작가의 책을 읽으며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이미 세상을 삼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물결 위에서 새로운 항로를 그리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해안가에서 조심스레 발끝만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질병으로 인해 잠시 멈춘 시간이 내게 필요한 휴식이었음을 알면서도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 한켠을 불안하게 했다.
이 병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속도’였다. 예전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늘 달렸지만 이제는 멈춰 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거대한 움직임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즐거운 명절 연휴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어쩌면 그 두 가지 감정 즉, 회복의 안도감과 시대의 뒤처짐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교차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새벽의 공기 속에서 나는 그 두 감정을 함께 껴안으며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배우는 것’뿐임을 다짐했다.
오전, 아내와 막내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올 때쯤이면 나는 이미 독서와 가벼운 운동을 마친 상태였다.
늦은 아침을 대신한 점심을 함께 먹고 나니 창밖에는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추석 연휴의 한가로운 오후, 우리는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2차전을 보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경기 시작 전부터 치킨과 캔맥주를 꺼내며 분위기를 달궜겠지만 이제는 그때의 열기 대신 차분한 응원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막내는 콜라에 치킨을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견과류 그리고 과일 한접시와 함께 비로 인해 조금 늦게 시작된 야구를 시청했다.
비 오는 날이면 늘 김치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던 예전의 나는 없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맑은 정신과 가벼운 마음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가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모레면 우리 가족 모두가 응원하는 SSG 랜더스가 기다리고 있는 인천으로 무대가 옮겨진다.
잠시 TV 속 화면을 바라보며 두 팀의 준 플레이오프전 예고 엠블럼이 비치는 장면을 보니 이상하게도 설렘과 긴장이 함께 밀려왔다.
내일 오후 두 시부터 시작되는 준플레이오프 티켓 예매를 위해 딸과 막내는 일찌감치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딸은 나와 아내의 휴대폰에 예매 어플을 설치하는 방법을 카톡으로 알려주며 “아빠, 내일은 우리 가족 모두가 예매 전사예요!”라며 웃었다.
막내는 인터넷 속도가 생명이라며 내일 오후 한 시부터 친구들 세명을 섭외 후 PC방에 미리 들어가 대기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은 만약 예매에 성공하면 인천으로 직접 올라가 직관을 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듣기로는 내일 준 플레이오프전 예매는 흡사 김영웅의 콘서트 예매만큼이나 힘들다고 한다. 과연 그 행운이 막내의 손에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에 잔뜩 부푼 막내를 보며 흐뭇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와 아내가 병을 겪으며 한동안 우리가족의 대화 주제는 늘 치료와 병원,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상적인 웃음과 조금은 허황된 계획의 꿈과 설렘으로 집안이 가득 찼다.
비록 나는 그 현장에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웃음소리로 가득 찬 저녁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잔잔한 빗소리가 들렸고 거실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감돌았다.
어쩌면 이 평범한 일상 속의 소란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회복의 또 다른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병과 싸우던 시간에는 하루하루가 버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 하루들이 다시 살아가는 시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불안과 뒤처짐의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가족의 웃음소리와 함께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