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 더 이상 협박의 언어로 살고 싶지 않다.

편도암으로 인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 후 퇴원 47일차의 기록

by 마부자

아침 창문을 여니 공기 속엔 가을의 차가운 기운이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거실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조용히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치료 이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여전히 입안의 건조함과 미각의 둔함은 남아 있지만 그 속에서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몸의 변화를 느낀다.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던 목이 이제는 차가운 물 한잔쯤은 부담 없이 삼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커피 대신 미지근한 물한잔과 함께 마시며 창가에 앉았다. 멀리 새벽 아파트 단지 안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휴일에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오늘도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동안 정지되어 있던 내 삶의 시간이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의 속도는 아니지만 지금의 속도도 나쁘지 않다.


잠시 멈추었던 만큼 더 깊이 보고 더 천천히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주는 평화 속에서 나는 다시 다짐했다.


완전한 회복이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이런 사소한 시간들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임을 이제 하루의 첫 문장을 썼으니 다시 오늘의 나를 살아갈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연휴의 끝자락,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가 찾아왔다. 긴 휴식의 나른함을 털어내듯 아내와 함께 인근 산책로를 걸었다. 며칠 동안 이어진 흐린 하늘이 걷히자, 공기 속엔 마른 햇살 냄새가 스며 있었다.


연꽃습지에 도착하니, 지난 5월 투병 전 마지막으로 걸었던 그날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연잎은 이미 제 철을 지나 노랗게 색을 바꾸고 있었고 잎 사이로 드문드문 남아 있는 연꽃 몇 송이가 가을 햇살에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


생명이 지는 모습 속에서도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습지 위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아내는 스카프를 목에 감으며 “이젠 정말 가을이네”라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맞췄다. 치료 이후 이렇게 오랜만에 느긋하게 걸으며 계절을 온전히 느껴본 것이 처음이었다.


예전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작은 풀 한 포기, 바람결에 흔들리는 얇은 갈대 줄기마저도 오늘은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몸의 감각이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맞고,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그 단순한 행위가 큰 위로가 되는지를 오늘에야 다시 알았다.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생각했다. 회복이란 단지 병이 나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세상의 온도를 다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연휴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걷는 법을 배웠고 그 길 위에서 아내의 따뜻한 미소를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산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온전한 휴일을 소파에서 보내며 최근 나를 TV속에 푹빠지게 한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를 시청을 했다.


문득 드라마 속의 주인공의 불의에 대처하는 방식인 협박과 협상의 차이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투병의 과정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암이라는 병은 내 몸을 향한 일종의 협박처럼 다가왔다. “이제 너는 끝났다.” “너는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 그 공포의 언어는 협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내가 그 협박 앞에서 주저앉지 않은 이유는 나 스스로 병과 협상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치료의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잃어버린 미각 대신 더 깊은 사유의 시간을 얻기로 불편한 몸을 감수하는 대신 가족과 하루를 더 오래 함께하기로. 그렇게 나는 협박이 아닌 협상을 선택하며 살아남았다.


돌아보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때로 누군가에게 협박을 하며 살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상대를 억눌렀다.


또 반대로 나 역시도 협박을 당하며 살았다. 조직의 논리 앞에서 성공이라는 허상 앞에서 때로는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무작정 따라가야 한다는 강요 속에서.


그런 모든 순간들이 결국 나를 소진시켰다. 이제야 조금 깨닫는다. 협박으로는 관계도 삶도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협박은 두려움을 남기지만 협상은 가능성을 남긴다. 협박은 상대를 꺾어놓지만 협상은 함께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내가 지금 이렇게 다시 하루를 기록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병과의 협상을 통해 얻은 선물 같은 시간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협박의 언어로 살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타인에게도 협박이 아닌 협상을 건네고 싶다.


병과도 인간관계와도 나 자신과도. 삶은 결국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니까.